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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21. 2023

도망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줄곧 무언가로부터의 도망침이었다.


 어렸을 때는 사사건건 간섭하고 옭아매는 부모님으로부터의 도망을 간절히 원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한 뒤로부터는 매번 더 근사한 남자로 도망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반복된 사귐과 헤어짐이 지긋지긋해질 때쯤 결혼을 했고, 마침내 그 결혼에서도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나에게 도망은 좋게 말하면 견딜 수 없는 것에게 고하는 '헤어질 결심'이자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드디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렇듯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내게 요즘 공통적으로 들리는 질문이 있다.

  "부장, 그거 하면 뭐가 더 나와요?"

 학교에서 부장 보직을 맡았을 때의 이점에 관한 질문이다. 급여가 조금 더 나오긴 한다. 한 달에 십만 원 정도. 하지만 실제 부장으로서 맡게 되는 일과 책임의 무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다. 적절한 대답을 머릿속으로 고르며 스스로도 왜 부장교사 자리를 다시 맡았는지 차근차근 자문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우습게도 또다시 '도망'으로 귀결되었다.

 "이제 그만하려고요, 교단에 서는 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칠할 이상이 즐겁다. 삼할 정도는 힘들다. 하지만 계속하고 싶지는 않다.

 교사에게 지우는 짐에 비해 누구도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귀신같이 알고 있다. 학교는 점점 더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돌봐주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부모의 짐을 덜어주는 보육의 역할을 하는 정도로 급이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학교 측은 단지 큰 사고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에 급급하다. 그런 작금의 세태를 어떻게 하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물론 오랜 꿈이기도 했다. 부장 경력을 채운 뒤에 홀홀히 교육청으로 행정직이 되어 떠나고 싶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했던 교단에 이제는 안녕을 고하고 싶다.




 어제 마포에 있는 서울시 산하 기관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가기 전 연남동에서 글쓰기 모임 분들과의 식사 자리에 먼저 들렀다.

 홍대입구역에 내려 밖으로 올라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답게 거울 앞이 북적북적했다.

 나도 잠시 화장을 고칠까 해서 쓱 거울을 쳐다보다가 한 매력 있게 생긴 어린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십 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예쁜 사람이 예쁜 사람을 알아볼 때 반짝이는 그런 눈빛이 있다. 그 애는 나를 쳐다보더니 몸을 살짝 비켜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앳된 동그랗고 살이 차오른 탱글탱글한 얼굴을 보다 내 얼굴을 보니 역시 원숙미가 있어 보였다. 좋게 말해 원숙미고 역시 군데군데 패인 얼굴에서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고 할까. 그걸 인지하고 나니 영하의 날씨에도 핫팬츠와 짧은 재킷을 입은 학생들 사이에 계속 서서 쿠션을 두드리고 있기가 민망해졌다. 가방 안에 있던 두 가지 립스틱 중에 잠시 고민하다 비교적 최근에 산 것을 쓱쓱 바른 다음, 조금은 혈색이 돌아 보이는 지만 빠르게 확인하고 홱 돌아서 나왔다. 나는, 보기 흉하지 않게 늙어가고 있는 걸까? 한참 손아래인 사람과 아직도 나도 모르게 외모를 비교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내려놓고 싶다. 노화에 있어서는 맞서 싸우기보다 서서히 받아들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일 년을 넘겨 오랜만에 만난 분이

 "이전보다 분위기가 너무 화사해지셨어요."

 라는 말을 건넸다. 나도 안다. 요즘 나는 너무 신이 나있다는 걸. 마치 나무가 물을 머금은 것처럼. 결혼이라는 제도로부터 도망쳐 나와 다시 찾은 자유는 마치 쇼생크에서 탈출한 기분이랄까. 나는 누구든 만나도, 또는 만나지 않아도 된다.




 출장 장소에 시간을 맞춰 도착했다. 올해 첫 대상자를 받게 된 학교안전지원단 분들과 만나 업무 조율을 하러 온 자리였다. 이 사업은 50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아침에 교통 봉사를 도와주셨으면 해서 신청한 거였는데, 매달 57시간을 가급적 채워달라는 관계자의 설명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실제로 우리 학교에 배정된 두 분을 만나 뵈니 역시나 나보다 나이가 훨씬 지긋하신 여자분 한 분, 남자분 한 분이었다. 특히 남자분은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 몇 년 일찍 명예퇴직을 했다고 하셨다. 겉보기에도 조금은 벗어진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 까만 뿔테 안경 뒤 작고 긴 눈이 꼬장꼬장해 보이는 인상이셨다.

 시간당 만 원이 조금 안 되게 계산해서 그분들이 가져가시는 돈은 한 달에 50만 원 남짓이라고 했다. 문득 이 액수가 이분들에게 많은 돈일까 적은 돈일까 궁금해졌다. 이만큼을 벌기 위해 은퇴 후에, 또는 다른 일자리가 없이 일하시는 거라 생각하니

 '큰돈도 아닌데 편하게 일하게 해 드리자.'

 라는 생각과

 '그래도 깐깐하게 열심히 일하시게끔 해야지?'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꼭 필요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지원하시지 않으셨을 터다. 그러니 정당하게 충실히 일하시게끔 도와드리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다 보니 새삼 내가 매달 받는 급여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만에 하나 학교폭력 사태로 인해 가해자 피해자 분리가 필요해지면 가해 학생을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두  지원자분께 드렸는데 다행히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나도 처음 하는 생활부 일이 마음의 짐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게 많은데 이렇게 하나라도 대비할 수 있게 되어 안도감이 든다. 교감선생님께 잘 말씀드려 두 분이 쉴 만한 공간도 알아보고 점심 식사 부분도 행정실에 알아보아야 하겠다.


 어딘가에 정확히 소속되어 있고, 거기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하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일까? 일을 하며 돈에는 크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것도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성에 안 차는 월급이지만 좀 더 아껴 쓰자는 다짐 또한 돌아오는 길에 한 번 해본다.


 학교로부터 멀리 도망을 치는 그 길에서 마주할 많은 사람들에게 최소한 모질지 않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할 수 있는 한 따뜻하게, 그러면서도 학교를 위해 보탬이 되도록 말 그대로 일을 잘하고 싶다. 그래서 마침내 정든 교단과 작별하는 그날, 지금의 이 시간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다면 떠나는 내 발걸음이 후회 없이 산뜻하고 발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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