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우리 부장님.

by 이주희

폭풍 같은 3월이 거의 끝났다. 처음 부장을 맡고 3월 초에제시간에 퇴근도 못하던 나는 이제야 오후에 잠깐씩 여유를 낼 짬이 생긴다. 1교시에 아이들과 갔던 도서실에서 빌린 '생의 한가운데'를 빈 교실에서 조금 펼쳐보려는 찰나 교감선생님 호출이 떨어졌다.

"부장님, 안 바쁘면 잠깐 들러요."


바로 교무실로 내려갔더니 긴히 부탁할 일이 있으시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 교감선생님께 이혼 소송에 대해 말씀드리며 같이 손을 맞잡고 울었던 그 방송실로 함께 들어갔다.


"3학년에 ooo 선생님 어때? 그 반이 자꾸 민원이 들어와."

지난주 우리 학년 학부모가 교무실로 민원 전화를 넣었다. 내용인즉슨, 아이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있는데 줌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반 선생님께서 결석 처리를 하겠다고 강압적으로 말했다는 불만이었다. 당시에는 정확히 몇 반에서 들어온 민원인지 몰랐다. 부장회의 때 교감선생님께서 실수로 3학년 학부모였다고 하시는 바람에 우리 학년인 건 눈치챘지만.

이제 알고 보니 64년생 남자 선생님 반에서 들어왔나 보았다. 내가 그분의 태어난 연도를 아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분의 줌 가입을 내 컴퓨터로 도와드렸기 때문이다. 그날 민원 건으로 여러 다른 부장님들 앞에서 3학년 전체를 대표해 부끄러웠던 나는 혹시 추후에 생길 만한 민원이 어떤 게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옆반 선생님이 줌 수업을 하실 때 교육용 아이디가 없어 40분마다 새로 회의를 연다고 말씀하셨던 게 마음에 걸렸다. 그날 민원은 코로나에 확진되어도 학습 결손을 막기 위해 되도록이면 줌 수업을 들어오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명할 거리라도 있었다. 하지만 한 반만 다른 반과 달리 수업을 짧게 한다면 그건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목요일 저녁 산책을 하며 그 판단이 여러 부장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감정이 섞인 결과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다음날 같은 학년 다른 선생님께도 이 건에 관해 여쭤보았다.

사실 목요일 부장 회의가 끝나고 교육과정 회의가 화상으로 있었는데 마칠 때쯤

'우리 학년 선생님 다 계신가?'

하여 확인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또 그 남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1년 간의 학교 교육과정 설명을 안 들으시면 나중에 일일이 다시 설명해야 할 일이 생길 텐데 어쩌려고 안 들어오셨을까 싶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자마자 옆반으로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회의 때 보니 안 계신 것 같아서요."

그랬더니 대뜸 아니라셨다.

"아, 제가 화면은 끄고 있었는데 있었어요."

당당하게 있었다고 하시니 할 말이 없어졌다.

"아... 그러셨구나. 저는 마지막에 다 계신지 보는데 안 계시길래 무슨 바쁜 일이 있으신가 하고..."

"저 있었습니다."

그 말투에는 당당함과 약간의 짜증이 섞여있었다.




결국 금요일 아침, 줌 수업을 여전히 40분에 끊어서 하고 계신지 부드럽게 여쭤보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 목이 안 좋으셨는지 수업이 끝난 후 점심을 후다닥 드시고는 조퇴를 해버리셨다. 마음먹었을 때 할 말을 하고자 문자도 보냈는데 한참을 있다 읽으시곤


긴급한 일이 있는지요?


라는 답문이 왔다. 나는 정작 해야 할 말 전에 다른 가지 치기를 먼저 했다.


아 네 선생님, 아니오. 월요일에 과학 드셨으면 저희 반 쓰고 준비물 보내드릴게요. 청소 용품으로 온 화장지도 왔어요.


하지만 그 후로 답문이 오지 않았다. 답문이 와야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그 이야기를 할 텐데 말이었다. 결국 그렇게 주말 내내 잠시 대화를 답보한 상태로 월요일을 맞게 되었다.


아침에 화장지를 들고 옆 반 교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아직 기침이 나오는 상태셨다. 이전 통화 때와는 달리 약간은 미안해하시는 눈치였다.

"선생님, 여기 화장지요. 그리고 과학 오늘 드셨나요?"

"네. 5교시에 들었어요."

"그러면 저희 반 이번 주 준비물 쓰고 보내드릴게요. 선생님 반 쓰시고 다음 반으로 보내주시면 돼요."

"아이구, 고맙습니다. 아직 제가 목이 많이 안 좋네요. 키트 검사하면 음성 나오긴 하는데... 부장님은 그때 어떠셨어요?"

"저도 딱 목부터 그러더라고요. 그러고 며칠 지나니까 양성이 뜨던데..."

"아,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때 원격 수업은 다 하셨어요?"

"네, 원격은 다 하고 그 다음주 등교 수업은 강사 구해주셨어요.”

“아, 그러셨군요.”

“선생님 그리고..."

드디어 벼르고 벼른 말을 꺼낼 타이밍이었다.

"혹시 줌 아이디는 sen메일로 새로 만드셨어요?"

선생님의 대답은 예상한 대로였다.

"아니오, 그게 아직...안만들었습니다."

"아, 선생님.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 번 해보시고 안되면 오후에 같이 해봐요."

그제야 선생님은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조금 찾아봤더니 이제는 새로 교육자용 메일로 가입하지 않아도 설정에서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나 보았다. 선생님의 연세를 생각해서 가장 보기 좋게 정리된 블로그를 메시지로 보내드렸다.


선생님~ 해보시고 안되시면 말씀 주세요.

오후에 연락이 왔다. 가입이 안된다고. 전산 실무사님과 한바탕 씨름을 하다가 안되어서 나를 부르셨나 보았다. 보니까 설정의 그 버튼은 바꾸신 것 같은데 새로 sen메일 아이디로 가입이 안되었다. 무슨 쿠키를 허용하라고 하는데 익스플로러 문제인가 싶어 크롬으로도 해봐도 화면이 넘어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설정을 들여다보니 이제 100명까지, 시간은 무제한으로 바뀐 것 같아

"선생님, 이제 아마 될 것 같은데 오늘은 퇴근 시간 다 되었으니 내일 줌 키셔서 40분 넘겨도 안꺼지는지 한 번 보셔요."

라고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이러는 와중에 내 자리에서 선생님 새 아이디를 만들겠다고 내 컴퓨터로 보내놓은 정보가 선생님 생년월일이었다.




"내년엔 특수부장 해. 젊은 사람이 학년 부장 하면 사람 대하는 게 제일 참 어려워."

교감선생님은 내가 학년부장 하는 게 많이 힘든 줄 아셨나 보았다. 사실 나보다 한참 손위인 선배 교사를 대할 때 무척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다른 힘든 선생님을 부장님 학년에 넣기도 그래서, 어쩌다 보니 그 선생님이 같은 학년으로 되어 버렸네."

교감선생님께서는 이전부터 그 선생님 때문에 곤란한 일이 퍽 많으셨던 모양이었다.

"ooo선생님한테 내가 부장님 좀 잘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려운 거 있음 그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해."

작년에 2학년 부장을 하신 현 친목회장 여선생님 이야기다.

"가만히 있어도 그분이 어, 작년엔 이렇게 했는데? 그건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말씀 많이 해주세요."

하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작년에 동학년을 했던 두 선생님은 아직도 그분을 부를 때 "부장님"이라고 한다.

"아, 그래? 그렇다고 또 거기 막 휩쓸리면 안 되는데."

"네, 그러다가 또 할 말 있으면 잘해요. 필요할 때. 올해는 처음이니까 그냥 FM으로 하려구요. 그리고 최대한 선생님들 도와드릴 거 있으면 도와드리려고 하고. 그러고 있어요."

"그래? 잘하고 있네."

나중에라도 어쩌면 학부모를 통해 알게 되실지도 몰라 옆반 선생님의 줌 아이디 얘기를 슬쩍해드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며 우리 두 사람은 웃음보가 터졌다. 사실 그 남자 선생님의 고군분투가 어떻게 보면 짠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 대부분의 선생님은 처음부터 교육용으로 줌 아이디를 만들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그냥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일반 버전의 줌으로 원격 수업을 해오셨는지 의아하지만, 그걸 물었다간 그 선생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격이 될까 봐 여쭤보지 않았다. 평화의 문 앞에서 PCR 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설 때도 QR코드 문진을 할 줄 모르는 어르신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종이 문진표를 작성하느라 뒷사람에게 추월을 당하기 일쑤다. 이제 겨우 고1이 된 늦둥이를 둔 선배교사이기도 한 그 선생님을, 나는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약간의 수다를 곁들인 짧은 면담 끝에 교감선생님은 한결 마음을 놓는 모습이셨다.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아주 잘하리라는 기대를 하시진 않으셨을 거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진심이란 결국 마음으로 통하기 마련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계속 믿고 싶다. 나도 늘 실수하고, 물어보는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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