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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pr 08. 2021

햇빛 쏟아지는 교정

생의 여름을 향해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

  얼마 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50분 정도 녹화를 했는데 마지막 즈음 교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잦은 교권침해 사건과 진상 학부모, 늘어가는 정서 불안 학생들 속에 교사의 직업적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되고 싶은 직업 1위'기도 하지만 '되고 나서 후회하는 직업 1위'기도 한 현 선생님들의 처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그때는 차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거의 교실 안에 있는 시간이 많지만 가끔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요즈음 교정은 날이 갈수록 더 아름답다. 그래도 초등학교가 그 진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때는 운동장의 모래알이 햇빛에 반짝이는 여름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실내화 주머니를 한 손에 들고, 등에는 무거운 책가방을 맨 채 삼삼오오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 방과 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축구를 하는 까까머리 남학생의 모습도 있다. 세상의 운명이 걸린 듯 진지한 한 판 승부가 끝나고 나면 함께 음수대에서 목을 축이다 물장난을 치는 모습도 여름 교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쨍한 햇살과 싱그러운 교목이 있는 여름에 아이들은 다른 계절보다 부쩍 더 많이 자라는 느낌이다.




  지난주 영화 [아무도 없었다]를 보고 태어나지 못한 채 죽은 아이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 내에 인도네시아인 남자 친구의 아이를 가졌다가 "자신이 없어 지웠다"는 한 여자의 고백이 등장해서였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이름을 지었다는 이유로 그를  주인공 앞에서 "미친 새끼"라고 했던 건 사실 그녀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가 아니었을까? 남자 주인공 또한 자식을 잃었다는 사실이 마지막에 밝혀지면서 영화는 거대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내었다. 태어난 후의 삶만을 생각하기에도 바빴던 내게, '삶 이전의 죽음'이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였다.

  최근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한강 작가의 ‘흰’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은 자신의 형제와 자매에 관한 이야기였다. 못 먹고 못 살던 70년대만 해도 산모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아기가 개월 수를 채우지 못하고 일찍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나 보았다. 그렇게 칠삭둥이나 팔삭둥이로 태어난 아이들은 대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수많은 스러진 생명 중 하나였을 자신의 동생을 떠올리며 작가의 마음은 순간순간 얼마나 뜨거웠을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손해사정사를 하는 분이 한 분 계시다. 그는 다양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에게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아다 주는 일을 한다. 때로 그는 자기 직업적 고충을 얘기하곤 했는데,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기본이고 때로는 이미 그 사람이 죽고 없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가족이 운영하는 이삿짐 일을 돕다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중년의 아저씨 이야기, 생계가 어려워 오토바이로 배달 일을 하다 사고로 죽은 아들의 어머니가 보상금에 욕심을 낼 기력조차 없다는 이야기 등... 세상엔 참 많은 사고가 있고 딱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맞닥뜨린 인생의 이런 큰 힘겨움을 곁에서 돕는 그의 일은 실로 고귀하다. 하지만 매일 다양한 이의 각기 다르게 생긴 불행을 맞닥뜨려야 하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힘이 들까.


  그에 비하면 초등학교 선생님은 어떤가? 우리는 그와는 반대로 이제 막 피어나는 생을 본다. 아니,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거기에 물과 거름을 보탠다. 내 작은 노력을 바탕으로 조금씩 더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마음이란! 그건 마치 공들여 심은 강낭콩이 몇 날 며칠 기다림 끝에 싹을 틔우고 떡잎이 날 때 환호성을 지르게 하는 그것과 같다. 이렇듯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이 얼마나 큰 기쁨과 보람으로 다가오는지 교사가 아니라면 그 누가 알겠는가?




  매일 학교 집 학교 집 하다 보니 그 손해사정사 분처럼 누군가가 다치거나 목숨이 스러져 가는 걸 직접 보며 슬퍼할 일이 별로 없다. 그 가운데 세월은 무심히 흘러 나는 어김없이 한 해 두 해 늙어간다. 하지만 그런 나의 나이 듦과 상관없이, 교사로서의 나는 아이들이 생의 한가운데인 여름으로 한 발짝씩 나아가는 모습을 끝없이 곁에서 격려하고 목격한다. 인생을 반쯤 살아보니 세상에는 꺼져가는 생명 앞에서 어떻게든 맡은 바를 해내야 하는 직업도 많은 바, 이 세상에 귀하게 태어나 자리를 잡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도하는 경이로움이야말로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의 정수가 아닐까요, 하고 그 인터뷰 때 말할 걸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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