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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30. 2022

부장님, 우리 부장님.

 폭풍 같은 3월이 거의 끝났다. 처음 부장을 맡고 3월 초에제시간에 퇴근도 못하던 나는 이제야 오후에 잠깐씩 여유를 낼 짬이 생긴다. 1교시에 아이들과 갔던 도서실에서 빌린 '생의 한가운데'를 빈 교실에서 조금 펼쳐보려는 찰나 교감선생님 호출이 떨어졌다.

 "부장님, 안 바쁘면 잠깐 들러요."


 바로 교무실로 내려갔더니 긴히 부탁할 일이 있으시다고 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 교감선생님께 이혼 소송에 대해 말씀드리며 같이 손을 맞잡고 울었던 그 방송실로 함께 들어갔다.


 "3학년에 ooo 선생님 어때? 그 반이 자꾸 민원이 들어와."

 지난주 우리 학년 학부모가 교무실로 민원 전화를 넣었다. 내용인즉슨, 아이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있는데 줌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반 선생님께서 결석 처리를 하겠다고 강압적으로 말했다는 불만이었다. 당시에는 정확히 몇 반에서 들어온 민원인지 몰랐다. 부장회의 때 교감선생님께서 실수로 3학년 학부모였다고 하시는 바람에 우리 학년인 건 눈치챘지만.

 이제 알고 보니 64년생 남자 선생님 반에서 들어왔나 보았다. 내가 그분의 태어난 연도를 아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분의  가입을  컴퓨터로 도와드렸기 때문이다. 그날 민원 건으로 여러 다른 부장님들 앞에서 3학년 전체를 대표해 부끄러웠던 나는 혹시 추후에 생길 만한 민원이 어떤  있을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옆반 선생님이  수업을 하실  교육용 아이디가 없어 40분마다 새로 회의를 연다고 말씀하셨던  마음에 걸렸다. 그날 민원은 코로나에 확진되어도 학습 결손을 막기 위해 되도록이면  수업을 들어오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명할 거리라도 있었다. 하지만  반만 다른 반과 달리 수업을 짧게 한다면 그건 문제가  소지가 다분했다.


 목요일 저녁 산책을 하며 그 판단이 여러 부장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감정이 섞인 결과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다음날 같은 학년 다른 선생님께도 이 건에 관해 여쭤보았다.

 사실 목요일 부장 회의가 끝나고 교육과정 회의가 화상으로 있었는데 마칠 때쯤

 '우리 학년 선생님 다 계신가?'

 하여 확인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또 그 남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1년 간의 학교 교육과정 설명을 안 들으시면 나중에 일일이 다시 설명해야 할 일이 생길 텐데 어쩌려고 안 들어오셨을까 싶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자마자 옆반으로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회의 때 보니 안 계신 것 같아서요."

 그랬더니 대뜸 아니라셨다.

 "아, 제가 화면은 끄고 있었는데 있었어요."

 당당하게 있었다고 하시니 할 말이 없어졌다.

 "아... 그러셨구나. 저는 마지막에 다 계신지 보는데 안 계시길래 무슨 바쁜 일이 있으신가 하고..."

 "저 있었습니다."

 그 말투에는 당당함과 약간의 짜증이 섞여있었다.




 결국 금요일 아침, 줌 수업을 여전히 40분에 끊어서 하고 계신지 부드럽게 여쭤보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 목이 안 좋으셨는지 수업이 끝난 후 점심을 후다닥 드시고는 조퇴를 해버리셨다. 마음먹었을 때 할 말을 하고자 문자도 보냈는데 한참을 있다 읽으시곤


 긴급한 일이 있는지요?


 라는 답문이 왔다. 나는 정작 해야 할 말 전에 다른 가지 치기를 먼저 했다.


 아 네 선생님, 아니오. 월요일에 과학 드셨으면 저희 반 쓰고 준비물 보내드릴게요. 청소 용품으로 온 화장지도 왔어요.


 하지만 그 후로 답문이 오지 않았다. 답문이 와야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그 이야기를 할 텐데 말이었다. 결국 그렇게 주말 내내 잠시 대화를 답보한 상태로 월요일을 맞게 되었다.


 아침에 화장지를 들고 옆 반 교실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아직 기침이 나오는 상태셨다. 이전 통화 때와는 달리 약간은 미안해하시는 눈치였다.

 "선생님, 여기 화장지요. 그리고 과학 오늘 드셨나요?"

 "네. 5교시에 들었어요."

 "그러면 저희 반 이번 주 준비물 쓰고 보내드릴게요. 선생님 반 쓰시고 다음 반으로 보내주시면 돼요."

 "아이구, 고맙습니다. 아직 제가 목이 많이 안 좋네요. 키트 검사하면 음성 나오긴 하는데... 부장님은 그때 어떠셨어요?"

 "저도 딱 목부터 그러더라고요. 그러고 며칠 지나니까 양성이 뜨던데..."

 "아,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때 원격 수업은 다 하셨어요?"

 "네, 원격은 다 하고 그 다음주 등교 수업은 강사 구해주셨어요.”

 “아, 그러셨군요.”

 “선생님 그리고..."

 드디어 벼르고 벼른 말을 꺼낼 타이밍이었다.

 "혹시 줌 아이디는 sen메일로 새로 만드셨어요?"

 선생님의 대답은 예상한 대로였다.

 "아니오, 그게 아직...안만들었습니다."

 "아, 선생님.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한 번 해보시고 안되면 오후에 같이 해봐요."

 그제야 선생님은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다.


 조금 찾아봤더니 이제는 새로 교육자용 메일로 가입하지 않아도 설정에서 바꿀 수 있는 버튼이 있나 보았다. 선생님의 연세를 생각해서 가장 보기 좋게 정리된 블로그를 메시지로 보내드렸다.


 선생님~ 해보시고 안되시면 말씀 주세요.

 

 오후에 연락이 왔다. 가입이 안된다고. 전산 실무사님과 한바탕 씨름을 하다가 안되어서 나를 부르셨나 보았다. 보니까 설정의 그 버튼은 바꾸신 것 같은데 새로 sen메일 아이디로 가입이 안되었다. 무슨 쿠키를 허용하라고 하는데 익스플로러 문제인가 싶어 크롬으로도 해봐도 화면이 넘어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설정을 들여다보니 이제 100명까지, 시간은 무제한으로 바뀐 것 같아

 "선생님, 이제 아마 될 것 같은데 오늘은 퇴근 시간 다 되었으니 내일 줌 키셔서 40분 넘겨도 안꺼지는지 한 번 보셔요."

 라고 말씀드리고 돌아왔다.

 이러는 와중에 내 자리에서 선생님 새 아이디를 만들겠다고 내 컴퓨터로 보내놓은 정보가 선생님 생년월일이었다.




 "내년엔 특수부장 해. 젊은 사람이 학년 부장 하면 사람 대하는 게 제일 참 어려워."

 교감선생님은 내가 학년부장 하는 게 많이 힘든 줄 아셨나 보았다. 사실 나보다 한참 손위인 선배 교사를 대할 때 무척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다른 힘든 선생님을 부장님 학년에 넣기도 그래서, 어쩌다 보니 그 선생님이 같은 학년으로 되어 버렸네."

 교감선생님께서는 이전부터 그 선생님 때문에 곤란한 일이 퍽 많으셨던 모양이었다.

 "ooo선생님한테 내가 부장님 좀 잘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어려운 거 있음 그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해."

 작년에 2학년 부장을 하신 현 친목회장 여선생님 이야기다.

 "가만히 있어도 그분이 어, 작년엔 이렇게 했는데? 그건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말씀 많이 해주세요."

 하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작년에 동학년을 했던 두 선생님은 아직도 그분을 부를 때 "부장님"이라고 한다.

 "아, 그래? 그렇다고 또 거기 막 휩쓸리면 안 되는데."

 "네, 그러다가 또 할 말 있으면 잘해요. 필요할 때. 올해는 처음이니까 그냥 FM으로 하려구요. 그리고 최대한 선생님들 도와드릴 거 있으면 도와드리려고 하고. 그러고 있어요."

 "그래? 잘하고 있네."

 나중에라도 어쩌면 학부모를 통해 알게 되실지도 몰라 옆반 선생님의 줌 아이디 얘기를 슬쩍해드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며 우리 두 사람은 웃음보가 터졌다. 사실 그 남자 선생님의 고군분투가 어떻게 보면 짠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에 대부분의 선생님은 처음부터 교육용으로 줌 아이디를 만들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그냥 구글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일반 버전의 줌으로 원격 수업을 해오셨는지 의아하지만, 그걸 물었다간 그 선생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격이 될까 봐 여쭤보지 않았다. 평화의 문 앞에서 PCR 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설 때도 QR코드 문진을 할 줄 모르는 어르신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종이 문진표를 작성하느라 뒷사람에게 추월을 당하기 일쑤다. 이제 겨우 고1이 된 늦둥이를 둔 선배교사이기도 한 그 선생님을, 나는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약간의 수다를 곁들인 짧은 면담 끝에 교감선생님은 한결 마음을 놓는 모습이셨다.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아주 잘하리라는 기대를 하시진 않으셨을 거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진심이란 결국 마음으로 통하기 마련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계속 믿고 싶다. 나도 늘 실수하고, 물어보는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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