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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글사글 Jun 19. 2020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라틴어 방식으로 쓰인 ‘Nusquama’가 변형된 이 단어는 ‘어디에도 없음’을 뜻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고민해 보기에 앞서 다른 이들의 관념을 살짝 빌려보았다. 플라톤은 덕을 갖춘 철학자가 다스리는 참주정 사회를 이상 사회라 말하고 프란시스 베이컨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를 말했다. 영화 <스타 트렉> 시리즈에선 화폐가 없고, 누구나 원하는 자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산주의적 이상 세계를 미래 사회로 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는 세상을 상상하며 현실의 문제와 맥락을 끌고 왔다. 


 그렇다면 나도 지금 우리의 고민을 끌고 와 혐오 없는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정의하고 싶다. 여태껏 끊임없이 말하던 노인과 성소수자는 물론이고 성별이나 출신 지역, 외모와 경제적 상황까지도 넓게 넓게 범위를 확장해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가끔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나라가 정상성의 개념을 규정하는 데에 혈안이 돼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학생은 이런 활동을 해야 하고~ 나이가 차면 취업을 하고 결혼시장에 발 빠르게 매물로 입장해야 하며 귀여운 아이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체는 모난데 없이 건강해야 하고, 헤테로 섹슈얼이어야 하며 어릴 때 모습이 제일 ‘아름다운’ 시기로 규정되기도 한다. 무엇이 정상인지를 말하려면 3일 밤을 새도 모자라지만 분명한 건 이것들 모두 부질없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어떤 시대, 어느 나라를 사는지에 따라 정상의 개념은 항상 바뀌어 왔고 그렇기에 이런 개념은 강조될수록 더더욱 그 의미가 무색해진다. 

 그러니까 나는, 정상성의 개념을 확장하는 대신 그 경계의 모호함을 원한다. 무엇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구분도 안 가는 모습들을 꿈꾼다. 불완전을 완전으로 명시하는 거 말고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를 바란다. 완벽이라는 원을 그려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꾸역꾸역 애쓰는 거 말고 원 밖의 사람들의 불안과 불편함에 공감하고 싶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나아가는 걸음은 전진이 아닐 거다. 많은 사람들은 그걸 퇴보라 부른다. 각자가 상상하는 유토피아는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겠지만 그 세상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삶 앞에 실재하기 위해 우리는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야 할 것이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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