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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12. 2023

커피값이 부담스러운 아침

호화스러웠던 날들이여, 이제 안녕

월요일 아침에는 유난히 일어나기 힘들고 유난히 지하철에 사람이 많으며 점심시간이 지나고는 유난히 피곤하다. 이 모든 것이 출근 때문이라 생각하며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는 카페에 들러 가장 달콤한 음료를 사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고 매주 반복되다 보니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자취를 하고 나서 출퇴근 시간은 줄었지만 월요일 아침이 예전보다 산뜻해진 것은 아니다. 출근이 힘든 이유가 꼭 출퇴근 시간이 길어서만은 아니니까. 여전히 한 주가 시작되는 아침이면 기분을 전환시켜 줄 달달한 음료가 생각나지만 요즘에는 애틋한 시선만 보낸 채 카페 앞을 지나칠 때가 많다.




출근길 커피를 위한 카페는 다음의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앱으로 주문이 가능할 것, 지하철역에서 나와 회사까지 가는 길에 있을 것,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래 걸리지 않을 것. 현재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것이 스타벅스 하나뿐이다. 스타벅스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 기본인 아메리카노마저 4천 원이 넘는 곳이 아닌가. 커피에 달콤함이 추가될수록 가격이 오르는 탓에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라치면 아침 커피 값만 6천 원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친구들에게 생일선물로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나 쿠폰을 받아서 쓰기 바쁘다.

나라고 처음부터 커피값 몇 천 원에 흔들린 것은 아니다. 전 직장에 다닐 때는 출근길 카페의 조건에 전혀 충족하지 않는데도 시즌 메뉴를 마시고 싶다며 아침부터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스타벅스까지 가곤 했다. 커피값 절약은 자취를 하고서부터 시작됐다. 전직장보다 월급이 올랐음에도 자취를 하게 되자 월급 인상을 체감할 수 없었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관리비와 대출 이자를 시작으로 식비와 생활용품비가 몇 푼이라도 꼬박꼬박 나가니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아니라 카드 결제 금액만 차곡차곡 쌓인다. 창문이 한쪽에만 있어 통풍이 원활하지 않은 오피스텔이지만 여름에 마음껏 에어컨을 틀었다가는 관리비가 얼마나 나올지 몰라서 주말 낮에만 틀어 버릇했다.




이직을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어느 회사야?'라면 그다음으로 '회사가 어디에 있어?'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강남에 있다고 답하는 말투에 어떠한 허세와 자부심을 담지 않아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좋기는, 점심값만 많이 나가지'. 이 대답은 순도 100%의 진심이다. 강남에 집을 산 것도 아니고 회사를 다니는 건데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러면서 나도 런던 출장을 갔을 때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 업체 미팅에서 똑같은 얘기를 했다.
'트라팔가 광장이라니, 런던 한복판에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좋기는요, 물가만 비싸.'
업체 직원의 대답을 듣고서야 나에게 똑같은 말을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 사람들이 본 것은 비싼 물가와 점심값이 아니라 그 동네에서 누릴 수 있는 고유성과 편리성이라는 것을.

만약 내 월급이 지금의 1.5 배만 됐어도 지역적 특색을 충분히 즐겼을지 모른다. 점심마다 새로 생긴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니는 미식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회사에 일하러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심을 밖에서 먹는 건데 그런 점심식사에까지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억울하다'라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렇게만 보면 내가 엄청난 짠순이 같지만 나도 가끔은 과감하게 돈을 써 점심식사를 먹는다.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는 인생은 너무 서럽다며 점심 값으로 평소보다 한참 웃도는 금액을 지불한다. 다 먹고 나서 후회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날도 있어야지'라며 나의 과감함을 토닥인다.




나의 과감함이 가장 많이 발휘되는 분야는 여행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어쩔 때는 두 번씩도 해외여행을 갔으며 국내 여행은 훨씬 잦았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해외여행은 다시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지만 마침 자취를 시작한 시기와 겹쳐서 과연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이미 손은 항공권을 결제하고 있었다. 숙소 예약까지 마치고 나서도 나에게 과연 여윳돈이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았다. 그러다 월초 가계부 정리를 하면서 흠칫하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섬뜩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들어오는 돈에는 한계가 있는데 나갈 일만 남은 것이 아닌가. 옛날 생각하고 해외여행을 결제했다가 월 생활비를 대폭 줄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제야 철이 든 건지 이제는 계획적으로 소비해야 하며 즉흥적인 여행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최근에는 전세 대출금 이자마저 1.8%에서 2.1%로 올랐다. 월 2만 원이 오른 거면 OTT 서비스 하나 더 보는 가격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청년의 재정 상황을 고려한 대출 상품이라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예전만큼 돈을 모을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돈이 더 간절해졌다. 나도 언제까지 오피스텔 전세로만 살 수 없으니 돈을 모아 미래를 기약해야 하는데 이렇게 돈 쓸 일만 생기니 가계부를 정리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로또도 사지 않는 사람으로서 로또 대박을 꿈꿀 수도 없고, 그저 현명하게 소비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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