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
회사에서의 오전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이른 기상으로 인한 졸음과 차곡차곡 누적된 피로 때문에 머리가 살짝 멍하다. 하지만 회사란 곳은 아직 맑지 못한 정신상태를 억지로 굴려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치게 만든다. '내 상태와 상관없이 업무시간이니 일을 한다'라는 마음으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찌어찌해서 업무에 적응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하던 오전이었다. 점심시간을 한 시간 정도 앞뒀을 때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원래 메시지를 바로바로 확인하는 편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메시지만큼은 다르다. 혹시 급한 일일까 싶어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2개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하나는 커피로 교환할 수 있는 기프티콘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반 메시지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이게 뭐냐며 빠르고 과장되게 답장을 보냈다.
'점심 먹고 돈 아까워서 커피도 못 마실 텐데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들고 들어가~^^'
감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편했다. 내가 지금 엄마께 커피를 얻어 마실 나이인가? 어쩐지 불효녀가 된 것 같아 커피 쿠폰을 넙죽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께서는 날도 좋고 햇살도 좋은데 커피 한 잔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라는 말씀과 함께 대화를 마무리하셨다.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에 들러 엄마께서 주신 쿠폰을 사용했다. 식후 커피가 불문율인 것을 확인해주듯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다. 매장 손님, 테이크아웃 손님 가릴 것 없이 북적거렸으나 그만큼 손이 빠른 직원 덕분에 얼마 안 있어 블랙 글레이즈드 라떼 톨 사이즈 한 잔이 내 손에 들렸다. 나는 바로 인증샷을 찍어 엄마께 보냈다. 엄마 말씀대로 유난히 날이 좋았다. 살랑살랑 옅은 바람을 맞으며 식후 산책을 할 때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몸서리치게 싫다. 삭막하고 갑갑한 큐비클에 저녁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을 온몸이 거부하나 보다. 하지만 손에 쥔 커피가 내게 속삭였다, 힘들고 답답할 때 한 모금 마시면 달달함이 충전되어 괜찮을 것이라고. 커피 맛만큼이나 달달한 속삭임이 마치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나는 뭉클해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어떤 자식들은 부모님의 임플란트 비용을 떡하니 내놓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아직도 캥거루족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못난' 아니 '못 버는' 자식은 울 수밖에. 임플란트까지는 아니어도 부모님을 좋은 식당으로 모시거나 명절에는 따로 용돈을 챙겨드리는 소소한 효도를 한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서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또는 '돈도 없다면서'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돈은 없지만 그래도 부모님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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