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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실 Oct 06. 2022

다음 이직은 또 어디일까?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의 업을 찾아서

새롭게 다니게 된 회사는 이전 직장과 전혀 다른 분위기다. 평균 연령은 훨씬 낮고 직원 수는 더 적다. 무엇보다도 개인주의 성향이 굉장히 뚜렷한데 특히 우리 팀은 점심식사를 전부 각자 해결할 정도다. 혼자 점심을 먹으면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고 이유를 캐묻던 이전 직장을 떠올리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다. 랍게도 나는 새로운 분위기에 금방 적응해서 혼자만의 점심식사를 즐기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는 의례적인 인사도 없이 시간이 되면 유령처럼 사라지는 팀원들에게 삭막함을 느끼려던 찰나 같은 팀의 선배가 약속이 없으면  같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선배라는 개념은 없지만 나보다 일 년 먼저 들어온 직원인데 사소한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해주고 첫날 이런저런 사무용품도 챙겨서 고마운 마음에 혼자 속으로 '선배'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 팀의 유일한 자취생으로 내가 자취의 꿈에 젖어있을 때 집은 알아보고 있냐며 관심을 가져줬던 사람이기도 하다. 은행 상담을 받고 난 후 자취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을 때 그는 '하긴 보통 일이 아니죠'라며 의외의 질문을 했다.

"벌레 잘 잡아요?"

벌레를 너무 싫어해서 교환학생 때도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 잡아달라고 할 정도였던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 정말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자취를 계획했을 때만 해도 벌레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다. 돈 걱정만 했는데 벌레는 장애물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좀 안됐을 때 선배와 출장을 갔다. 근무지 내 출장이라 교통비조차 나오지 않지만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탔다. 출장길에는 선배의 동기 한 분도 동행했데 그분은 3개월 후 계약이 끝나는 계약직이었다. 선배 동기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선배에게 팀장 달 때까지 다니라고 했지만 선배는 몸서리를 치며 이직할 거라고 했다.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는 선배의 강경한 태도를 보며 나의 이전 직장들이 떠올랐다.




대학 부설 교육기관에서 일하던 시절 퇴사라는 것은 곧 계약 종료를 의미했다. 대부분 계약 기간을 채웠으나 계약 도중 이직에 성공해서 관두는 사람도 있었다.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계약직원들끼리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자신이 담당했던 일을 떠맡아하게 된 동료에게 미안다. 계약이 끝나기 전에, 아무리 늦어도 계약 종료 시기와 맞물려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계약 종료 시기가 다가올 즈음에는 전투적으로 채용 공고를 찾아보며 매일 지윈서를 작성했다.


계약직원들에게 퇴사일이 정해진 직장은 발판에 불과했다. 다들 여기서의 경력을 이용해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생각이었다. 우리에게 이직은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에 이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자유로웠다. 게다가 각자 가고자 하는 길이 달랐기 때문에 다양한 진로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일했던 박물관에서는 공무직으로 정년이 보장되기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적혀 있는 적은 월급을 봤을 때 한 번, 반복되는 주말 출근에 지칠 때 또 한 번, 1년이 지나고부터는 거의 매일 같이 이직을 생각했다. 신입직원이 들어와서 '저는 만족합니다' 또는 '여기에 뼈를 묻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결심이 과연 얼마나 갈 지 의심스러웠다.


언제나 나의 의심은 적중했다. 하지만 나보다 늦게 입사해서 더 일찍 퇴사하는 직원들을 볼 때 조바심이 났다. 동료직원들의 퇴사는 분위기를 헤집어 놓았고 남아있는 사람들마음 뒤숭숭다. 사내 업무용 웹페이지에 사직 결재가 뜰 때마다 서둘러 확인해보대부분이 공무직이었다. 남아있는 자들은 그들이 '탈출'했다고 말하며 부러워했다. 그렇다 보니 퇴사자를 따라 이직하지 않으면 나 혼자 뒤처지는 것 같고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상현상이 발생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지 오래다. 이직은 자연스레 더 좋은 곳으로의 취직을 뜻하기 시작했으며 이직에 성공했다는 것은 능력이 좋다는 뜻이 되어버렸다. 나도 또 한 번 이직하게 될까? 기나긴 출퇴근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그냥 가까운 곳으로 이직해버릴까 욱 하기도 하지만 진심은 아니기에 구직 앱을 뒤적거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이직을 꿈꾸는 회사원' DNA라도 생긴 건지 휴대전화에는 여전히 구직 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회사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면 구직 앱을 들어가 공고를 훑어보는 것으로 종종 마음을 진정시켰기 때문에 그동안 정이라도 들었나 보다.


정말로 이직을 결심했다면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하루빨리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지금 회사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회사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게 된다.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할 수 있을까? 지금 다니는 회사도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닌데.'라는 생각과 함께 있는 장점 없는 장점을 다 끌어모아 합리화하기에 이른다. 그 단계에 도달하면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서는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직장 선배 얘기로 돌아오자. 처음 함께 먹었던 점심식사에서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선배가 내게 물었다.

"인생의 목표가 뭐예요?"

직업적인 목표도 좋고 가치관적인 목표도 좋다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속으로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철학적인 질문을 건네는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당황한 탓이었는지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대답이 나왔다.

"글을 쓰고 싶어요."

선배는 나의 추상적인 대답을 구체화시키는 질문을 이어가더니 자신의 목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작은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나의 목표 내 귀에 흔하디 흔한 말로 들려서 실현 가능성도  볼품없 느껴졌다. 그러나 선배의 목표를 들었을 때는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이직을 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직장인으로서 회사를 옮기는 정도에 그치고 싶지 않다. 더 나은 보수, 더 나은 복지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관두고 싶다. 나의 다음 이직은 직장을 바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의 '업'을 바꾸는 것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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