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망설이지 말아요
수영장에서, 어디까지나 생활 체육을 하는 실내수영장, 특히나 우리 동네 수영장에서 초급과 초급이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수영복이다.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여성 회원들은 주로 무채색 계통의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3부 또는 7부 반신 수영복을 입는다. 좀 과감하다 싶으면 어깨라인에 색상이 가미된 정도다. 물론 남성분들도 비슷하다. 대체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 7부를 선호한다. 그렇게 무채색 계통의 초급반 시절이 가고 접영을 배우기 시작하는 중급반으로 승급이 되면 수영복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인생도 타이밍! 수영복도 타이밍!
대개 그쯤 되면 수영복이 늘어져서 바꿔야 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주는 승급 기념 선물로 무채색을 졸업하고 알록달록 이로 갈아탄다. 인생은 타이밍! 이때 나도 과감하게 갈아탔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이 갈아탈 때 같이 갈아타야 눈에 띄지 않는데 난 또다시 무채색이다. 어떤 이는 파란색 체크무늬로, 어떤 이는 초록색 꽃무늬, 젊은 아가씨는 섹시한 호피로 갈아탔는데 나는 또다시 세일 중인 3부 반신 수영복을 샀다. 제길. 고작 7부에서 3부로 짧아졌을 뿐 똑같은 반신 수영복이라니. 사놓고 보니 후회막심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급격한 변화보단 익숙한 것에 끌리고 세일하는 품목에 손이 가는 아줌마. 그게 나다. 하루 중 수영할 때가 제일 즐겁고 살면서 몇 벌의 수영복을 입을지도 모르는데 우선 사야겠다. 알록달록이 수영복!
내 행복이 고운 빛깔이듯 수영복도 고운 색으로
서칭만으로도 즐거운 여정이다. 수영복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이쁜 게 많다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등모양도 제각각이다. U백, V백, X백, Y백 등의 끈 모양으로 알파벳 타입이 여러 개다. 그리고 허벅지와 허리 경계까지 얼마나 수영복이 깊게 올라가는지에 따라 로우컷, 미들컷, 세미하이컷, 하이컷으로 나뉜다. 세미하이컷부터 골반 뼈 위쪽으로 수영복이 올라간다. 이런 다양한 모양은 자유로운 영법을 가능하게 하고 활동적인 동작에 적합하다고 하는데 생활 체육을 하는 나로선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이쁘면 된다. 무채색을 졸업하고 싶다. 내 행복 색깔이 무채색일 수 없듯 하루 중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름답게 물들길 바라는 마음이다.
무지개 빛깔 내 수영복
첫 선택은 파랑이다. 그냥 파랑이 아니다. 뭉게구름이 있는 맑은 하늘과 닮아 있는 파랑이다. 움직일 때마다 조명 아래 은은하게 펄이 반짝이고 어깨 선부터 아래로 색이 진하게 물들어간 일명 그러데이션 파랑. 위쪽은 흰색에 가깝고 아래로 갈수록 찐 파랑에 잔잔한 펄이 들어가 있다. 맘에 쏙 든다. 그런데 이 예쁜 수영복을 개시하기까지 또다시 3개월이나 더 걸렸다. 뭐가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아니다 기존에 새로 산 3부 반식 수영복을 제치고 이걸 입기엔 반신 수영복이 너무 새거라 아까워서였다고 치자. 그래, 난 행복에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첫 스타트를 끊고 나니 과감해졌다. 두 번째 수영복은 빨강, 파랑, 초록색이 조화롭게 섞인 세미하이컷으로 골랐다. 등 끈도 비키니 마냥 묶는 걸로 골랐다. 이번에도 마음에 쏙 뜬다. 이쁘다. 그리고 내 마음도 이쁘게 물든다.
짧아진 수영복만큼이나 망설임도 짧아졌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이든 하고 보자. 처음이라 낯설지만 누구도 내 수영복을 신경 안 쓰듯 내가 무엇을 하든 남들은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남들이 주지 않는 부끄러움을 스스로 만들어 나를 가두지 말자. 그냥 하면 돼! 주저하다 좋은 시절 다 간다. 좀 더 젊고 좀 더 건강할 때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들을 맘껏 즐겨보자.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행복을 망설이는 가.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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