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뛰었지만 노을 바라보며 라일락 향을 즐긴 달리기로 만족
“함께 뛰어볼래?” 나에게 “라면 먹고 갈래?” 보다 더 유혹적인 말이다. 말 한마디가 바짝 말라있던 마음에 뜨거운 불씨를 던진다. 함께 뛰는 재미가 한창인 아는 언니가 서울하프마라톤 취소표들이 나와 재신청을 받는데 함께 뛰어보자고 한다. 이 언니도 회사를 졸업하고 온갖 운동 삼매경이다. 그중 하나가 달리기인데 대회를 목표로 해보자고 제안한다. 대회일정표와 뛰는 코스를 살펴보니 겹치는 일정도 없고 무엇보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출발한다는 매력적인 코스를 거절할 수 없었다. 대학시절 거닐 던 거리, 사회 초년생 때는 점심 먹고 커피를 홀짝이던 거리, 연애할 때 남편과 함께 손잡고 걷던 거리다. 탁 트인 대로에 떡 하니 서있는 동상, 그리고 늘 마음을 설레게 했고 다잡게 했던 광화문 현판이 내걸린 대로를 주말 이른 아침에 달리는 차를 세우고 뛸 수 있다니! 이 멋진 기회를 어찌 마다 하겠는가. 다른 길은 몰라도 그 길은 일평생 한 번쯤 달려 보고 싶은 거리다. 그리하여 10km 마라톤을 결심했다.
서울마라톤 10km 예약, 꿀팁은 새로고침
코로나 이후여서 인지 아니면 달리기가 대세인 건지 실외에서 뛰는 마라톤 대회가 인기가 많아 순식간에 마감되기 일쑤라 재빠른 손놀림은 필수다. 접수시간에 알람까지 맞춰 놓고 대기하는데 언니가 직접 전화해서 내 접수를 챙긴다. 꼭 같이 뛰고 싶은데 잊고 있을까 싶어 친히 알림 전화를 준거다. 어쩌지 이거 국제 전화인데. “언니, 나 해외야”라고 말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면서도 설레는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접수하다 페이지가 안 넘어가면 다시 접속하지 말고 새로고침 해보라는 귀한 꿀팁을 남기고 언니는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오가며 접수완료를 향해 함께 달렸다. 당시 난 삿포로 한 카페에 앉아 버튼을 누르고 대기했다 다시 누르고 버벅 거리는 상황을 알리며 마라톤 대회 예약에 능수능란한 언니의 조언으로 성공적으로 예약을 맞췄다. 그리고 접수완료 인증숏으로 피날레를 날렸다.
5km, 7km 그리고 단숨에 10km
이제 딱 2달 남았다. 5km는 연습 없이 뛸만하지만 10km는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뛰면서 호흡과 페이스 조절을 하며 내 몸 상태를 살펴야 한다. 어느 정도 달렸을 때 숨이 가빠지는지 어느 정도 달릴 때 발목과 무릎에 통증이 있는 살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에서 내 인내심이 바닥이 나는지 가름해야 대회 당일 당황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 1km를 6분 40초에 뛰고 그 페이스를 유지하니 호흡이 힘들진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뛴 첫날 5km 연습거리에서 3km쯤 뛸 때 오른쪽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뒤 7km 연습거리에선 거의 다 뛸 때쯤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안 뛰다 뛰니 당연히 평소 같진 않겠지. 통증이 오고 나서야 준비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발목과 손목을 몇 번 돌려주고 다리 찢기 서너 번 해준 후 달리기 음악에 취해 바로 뛰기 시작한 게 원인이다. 세 번째 연습에선 긴 시간 몸을 풀어주고 달렸다. 그날 왜 그랬을까 10km까지 연습할 생각은 없었는데 공원 몇 바퀴 더 돌지 하며 10km를 꽉 채워 달렸다. 1시간 10분. '3번 연습 만에 10km를 1시간 10분 만에 뛰는 건 나쁘지 않은데!' 하는 생각과 좀 더 하면 1시간 안에 들어오겠다 싶었다.
모든 하다 보면 방법이 생긴다.
대회까지 시간이 있으니 착실히 연습만 하면 된다. 뛰다 걷지만 말자. 힘들면 천천히 라도 뛰어 앞으로 나가자. 신호등이 있는 길을 건널 때도 제자리걸음으로 페이스를 유지해 보자. 상체의 몸놀림을 최소화 하자. 발 뒤꿈치부터 지면에 닿고 발가락 끝으로 바닥을 치고 나가자. 운동화 신고 뛰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뛰면서 나만의 규칙들일 하나둘씩 생긴다. 연습을 하며 나만의 뛰기 요령이 생긴다. 무엇이든 해봐야 알고 생각하고 느끼며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달리기든 뭐든 말이다. 지금 하는 글쓰기 역시도.
대회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광화문 대로를 지나 아현을 끼고돌아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공원까지 가는 그 길이 그려진다. 이른 아침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 몸을 풀고 달릴 생각을 하니 설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론적으로 말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대회 이틀을 남기고 아들이 갑자기 폐렴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나는 그곳을 달리지 못했다. 무척이나 아쉽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실망스럽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엄마고 금쪽같은 내 새끼가 먼저지. 달리기가 뭐 대수겠는가.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오래간만에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뛰었고 간간히 라일락 향을 느끼며 뛰어 한동안 즐거웠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꼭 뛰고 싶다. 광화문 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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