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크리, 스기노야 당일온천
벚꽃 여행이 무색하게 머무는 동안 대부분 비가 왔다. 빼꼼히 햇살이 비추기도 했지만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들을 얼래고 달래는지 보슬비가 연신 내린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다닐 만 한데 축축하고 습한 건 어쩔 수 없다. 내 마음도 습기 가득하다. 아침은 되었는데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게 더디다.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으나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걸어야 당도할 수 있어 곳, 다케오에 머무는 동안 내내 미루었는데 기다린다고 멈출 비도 아니고 JR패스도 아직 유효해 하카타역에서 사가역으로 향한다.
산속 비집고 들어가는 사가현 후루유 온천
40분 기차 타고 사가역에 내려 띄엄띄엄 있는 시골버스를 타고 40분을 가야 당도하는 사가현 후루유 온천. 하카타 소도시 온천 여행으로 다케오 온천, 우레시노 온천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곳이다. 번거롭게 가는 길만큼이나 첩첩산중이라 초록초록 산속 풍경이 예술이다. 풍류를 즐기는 이들이 이 깊은 산속까지 파고든다. 드문드문 위치한 온천장들. 유독 내 눈에 띄는 온천장이 있으니 ‘온크리’와 ‘스기노야’. 온크리 온천장은 마케팅에 힘을 쓰는지 많은 블로거들이 리뷰를 정성스레 남겨놓아 덕분에 멋진 사진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그에 반해 스기노야는 온크리에 비해 조용하다. 온크리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길하나 건너면 바로인데 스기노야는 15분 남짓 걸어야 한다. 온크리는 대욕장이 널찍하고 스기노야는 오두막 전세 스팀사우나가 눈에 띈다. 대욕장은 어딜 가나 있는데 이 오두막 사우나는 쉽게 경험할 수 없다. 공식SNS를 살피니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 스팀사우나에서 산를 내려다보는 초록 뷰는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져 마음까지 푸르게 한다. 직접 눈에 담고 싶은 풍경이다. 그래 너로 정했어! 어차피 먼 길 가는데 15분 더 걸으면 운동되고 좋지!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해 본다.
산기슭 아지랑이 속 벚꽃 잔치
막상 길을 나서니 흩뿌리는 비도 비라고 바지 밑단이 축축하고 우산 펼쳐 들고 버스에서 내리니 오두막 스팀사우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온크리로 자연스레 발길이 이어진다. 호텔로 들어가는 길목에 탐스럽게도 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그렇게나 찾아 헤맨 만개한 벚꽃이 이곳에 피었다. 핑크 벚꽃뿐 아니라 샛노란 유채꽃과 동백꽃까지 푸른 숲 속 온크리와 어우러져 고운 색들을 뽐내고 있다. 오는 길이 번거로워 안 올까 미루고 미뤄서 때가 맞아떨어진 건지 때마침 핀 벚꽃들을 보게 된다. 게으름으로 예기치 않게 수지맞았다. 비로 종종 걸었던 걸음도 꽃들을 보느라 느려진다. 어느 꽃을 먼저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꽃들이 앞다투어 내게 온다. 희한한 일이다. 날이 흐려 대낮인데도 어스름한데 보슬비가 내리니 산등성이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흐릿한 산기슭. 청명하지도 않아 희뿌연 이곳에 핀 꽃들은 그 색이 더 영롱하고 또렷하다. 노랑은 더 샛노랗게 보이고 빨강은 더 붉다. 분홍 꽃잎은 말할 것도 없이 더욱 사랑스럽다. 오길 잘했다.
이곳저곳 볼 것 많은 온크리
느린 걸음으로 호텔로 들어선다. 이곳도 당일 온천이 가능하다. 로비부터 대욕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반듯하니 잘 갖추어져 있다. 로비에는 지역 기념품을 파는 작은 샵이 있고 그 옆으로 알록달록 키즈클럽이 있다. 그곳을 지나 대욕장으로 가는 길은 눈비 안 맞도록 처마가 드리워져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관내 작은 정원이 나온다. 가지런히 정돈된 풀과 이끼 낀 돌, 곱게 이발한 앉은뱅이 나무들까지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산 아래 거친 자연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사람의 손길이 곱게 닿은 것들이다. 자연과 사람의 손길이 조화롭다. 그리고 한편에는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발 한번 담그는 걸로 부족하다. 온몸을 오래도록 담그고 싶다.
들어앉아 있기 딱 좋은 38도 온천물, 온크리
실제로 이곳 온천물은 38도로 여타 다른 곳에 비해 온도가 낮아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대개 40도가 넘는 뜨거운 온천물이라 오래 못 앉아 있고 15~20분 정도 탕 안에 있다 나와 잠시 쉬곤 하는데 이곳 탕은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어 탕 안에서 산수 구경하기 딱이다. 탕도 히노키, 폭포, 바위, 증기탕 등 여럿이지만 초록뷰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건 똑같다. 탕 안에 앉아 있으니 아까 보았던 동백꽃과 유채꽃이 이곳에도 있다. 벚꽃을 빗긴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선 때를 잘 맞춘 온천여행이다. 꽃과 함께 하니 탕 안에 더 오래도록 있을 수 있다. 내 마음에도 꽃이 핀다.
갈까 말까 오두막 스팀사우나
따뜻하게 온천욕을 하고 나와 대욕장 휴게공간에서 숨을 고른다. 눈앞에 오두막 스팀사우나가 아른거린다. 흠… 가야 할 것인가 말 것 인가. 이대로도 딱 좋은 데 오두막 스팀사우나를 하면 더 좋을까?! 몸은 노곤한 데 가고 싶은 욕망이 그득그득하다. 할 수 없다. 가야지.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15분 거리. 언제나 그렇듯 구글맵으로 주변 분위기를 가름하기 어렵다. 주변 이정표를 보고 상상할 수밖에. 딱히 이정표도 없으니 한적한 시골길 같다. 비는 부슬거리고 분명 인적은 드물 테고. 에라 모르겠다. 왔으니 간다.
온천을 위한 등반, 스기노야
혼자 걷는 길은 고요하나 자칫 판단을 잘못하면 공포다. 구글맵에 목적지를 찍고 직선길로 가는데 고개를 살짝 들어 보이는 ‘스기노야’를 보고 갈림길에서 언덕배기로 올랐다. 물론 발길 밑에도 직선길은 있었다. 내가 올라온 언덕배기 끝은 다른 온천장이었고 그 온천장 뒤로는 막다른 길. 올라왔으니 낭떠러지까진 아니어도 제법 높은 길 끝이다. 온천장도 인기척 없이 고요하다. 비는 여전히 부슬거리며 내리고 있다. 아.. 무섭다. 줄행랑을 치듯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다시 직선길을 따라 걷는데 15분 거리가 50분 마냥 길게 느껴진다. 분명 눈앞에 있어야 하는데 ‘스기노야’는 고개를 치켜들고 봐야 하는 산 중턱에 있다. 그래 맞다. 뷰가 좋았던 이유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뷰가 좋았던 거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 있을 줄이야. 오르막길을 또 걷는다. 길은 나 있으나 엄연히 구불구불 산길이다. 에고 힘들다. 온크리에서 그냥 숙소로 돌아갈걸! 깔끔하게 씻고 왔는데 땀범벅이 됐다. 그냥 되돌아가기에 많은 길을 왔다. 어쩌냐 그냥 킵고잉이지. 겨우겨우 당도한 스기노야. 비와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 당일온천은 1시간 남았단다. ‘하이’ 외마디를 외치곤 땀으로 젖은 옷을 벗고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스기노야 대욕탕에 입성했다.
나 혼자 산자락 오두막 스팀사우나
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듯. 대욕장 탕은 예상보다 작았다. 결정적으로 오두막 스팀사우나에서 땀 빼고 그 옆에 놓인 대나무통에 들어앉아 콧노래 부르며 즐기려 했는데 이런! 대나무탕은 냉탕이었다. 봄꽃은 폈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에다 산속이라 더 추운데 냉탕이라니. 릴랙스 의자도 전혀 릴랙스 하지 못하다. 다만 이곳까지 이끈 오두막 스팀사우나는 전세 내듯 나 혼자 즐길 수 있어 좋았다. 2명이 들어가면 족한 작은 공간에 콕 틀어박혀 상상하던 대로 창밖 푸른 잎과 고운 벚꽃, 가지에 대롱이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저 멀리 실개천도 보인다. 따뜻한 오두막 안에서 조용히 머무니 잠이 솔솔 온다. 혼자 있으니 따뜻한 나무의자에 등 대고 누워 본다. 나무향이 은은하니 좋다. 언덕배기가 힘들긴 했지만 나무향기 배인 이곳에 누워 있으니 오길 잘했다. 긴 시간 머물며 단잠을 자고 싶지만 당일 온천시간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하산해야지. 아깐 모르고 온 길이라 힘들었지만 이젠 예상이 되니 한결 마음이 낫다. 버스 시간에 맞춰 가려면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
길 따라 벚꽃잔치가 열렸네
하산길, 호텔 직원이 버스 타는 곳까지 차로 데려다준다고 한다. 당일온천임에도 송영서비스를 해주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비 맞아가며 빗길 뚫고 온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산길을 단숨에 내달려 개천을 따라 차는 달리는데 벚꽃이 흐트러지게 피어 바람에 흩날린다. ‘떨어지는 꽃잎 손바닥에 놓아두고 싶은데..’ 차로 빠르게 지나온 길을 되감기 하고 싶다. 이 길이야 말로 꾹꾹 밟아줘야 한다. 호텔 직원 덕에 버스 정류장까지 쾌적하게 쾌속으로 내려와 굳이 또다시 그 길을 되감기 한다. 걷다 뛰다 걷다 뛰다. 편안하게 비바람 안 맞고 여유롭게 버스정류장에 당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이서 벚꽃을 보려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하고 싶은 걸 미루지 못 한다. 나란 인간, 어쩔 수 없다.
꽃놀이하러 나선 길은 아니었지만 내 눈앞에 꽃잔치가 한 상 차려졌다. 느릿느릿 잔치가 빨리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벚꽃길을 되감기 하다 또다시 등은 땀으로 젖었지만 내 마음은 핑크빛으로 물들어간다. 오늘도 비는 오지만 맑음이다.
다양한 온천탕이 굿! 꽃 필 때 금상첨화! 온크리
https://maps.app.goo.gl/h7eYFYfrzi1eLxqU9
산중턱에 놓인 스기노야, 오두막 스팀사우나는 베리 굿! 차로 간다면 추천, 걷는 다면 비추
https://maps.app.goo.gl/X3GtZ7ymom9dq8HE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