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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천사들 5화

의외의 복병

by 김사임


학교생활은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아이들과도 소통도 원활해졌고, 학업 성취도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처음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시던 선생님들도 안도하는 눈빛으로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곤 하셨다.


"버스로 통근하느라 고생 많으시죠?

그런데 가방은 뭘 그리 가득 찼어요?"


그랬다.

마치, 군 입대한 군인들이 불평할 겨를도 없이 군대에 적응하듯, 나 역시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밤마다 학습 지도안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구상하다 보면 금세 새벽이 밝아왔다.

담날 새벽같이 30여 분을 걸어 터미널에 도착하고, 한 시간가량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가 있는 도시에 내렸다.

그곳 터미널에서 학교까지 다시 15분 거리를 걸어야 했다.

하루에 왕복 4시간 가까운 시간을 매일 통근한다는 건, 지금 돌이켜 보아도 힘들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출근 이틀째부터였다.


학교가 있는 도시의 터미널에서 내려 학교로 향하는 길은 상가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골길이었다.


갈대밭 건너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길을 걸으며 '참 예쁜 곳이구나, 언제 친구들하고 한 번 와야겠어!' 생각하며 걷는데 자꾸 누군가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 본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전에는 의레 동네마다 정신세계가 조금 심란한 사람이 한두 명씩 있었다.

아마도 그 청년도 그 동네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으면서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바짝 붙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만, 열 발자국쯤 뒤에서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걸음을 재촉해서 재빨리 학교로 들어가면 다행히도 학교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귀신같이 시간을 알았는지,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어김없이 내 뒤를 따라붙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하루를 계획하며 걷던 출근길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청년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가 사람이 드문 한적한 길에서는 더 경계가 되고 불안했다.


그리고 뒤에서 간간이 "아, 아!" 내지르는 소리에 놀라고 마음이 참 편치 않는 출근길이었다. 차라리 내 앞으로 걸어가면 더 나을 텐데... 그건 내 생각뿐.. 누군가 뒤따라오는 그 불편한 심정은 하루의 시작부터 피곤을 가중시키는 일이었다.


그나마 학교에 들어서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가에 앉은 아이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니?"

창가로 다가섰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청년이 창문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교실 안을 들여다보며 히죽거리고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가 우리 반인 건 또 어떻게 알았지?

혹시 일부러 바보처럼 위장한 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나' 싶었다.


"선생님, 바보 형이에요.

신고하세요!!"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심장은 뛰었지만, 최대한 내색은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창문을 닫으라고 말한 다음 어쩔 수 없이 1반 총각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선생님은 크고 긴 지시봉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1반 선생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청년은 그날은 그렇게 학교에서 사라졌다.






그런 일이 생기자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학교마저 안전지대가 무너진 듯한 불안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날 총각 선생님 효과로 혹시나, 다음날부터 안 보이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내 기대는 우습게 무너졌다. 그는 다음날 또 어김없이 터미널에 모습을 드러냈다.


1반 총각 선생님 포스가 장난이 아니셔서 많이 혼났을 텐데, 하루아침에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잊어버렸다는 게 놀랍고 섬뜩할 따름이었다.


아침부터 뭐가 그리 신난 지, 어김없이 교문 입구까지 질질 끌리는 발소리와 "아!. 아!"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그 청년과 반대로 출근길부터 동네 바보 형아와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내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고, 나는 나날이 지쳐갔다.


직접 시비라도 걸면 신고라도 하고 싶었지만, 이런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이미, 나는 한 달 사이 몸무게가 5킬로 이상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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