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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천사들 4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by 김사임



"음악 수업을 어떻게 하지?"


풍금이 있어도 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음악 수업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박자와 리듬을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전할지 망설이다가, 떠오른 방법은 손뼉과 발 장단을 이용한 분단별 릴레이 게임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진행해 보기로 했지만,

아이들이 과연 흥미롭게 따라올지 걱정이 되었다.


음악 수업이 있는 날!

쉬는 시간이 되자 반장 재형이와 몇몇 남자아이들이 다가왔다.


"선생님, 풍금 가지고 올까요?"


그렇잖아도 고심하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풍금 없어도 돼"


아이들은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풍금 없이 음악 수업을 한다고?'

의구심으로 멍한 시선을 서로 주고받았다.




드디어 긴장되는 음악 시간이 되어,

나는 아이들에게 수업 내용을 설명했다.


4학년 1학기 음악 수업 첫 곡은

"대한 소년가"였다.


4분의 2박자

발을 한 번 구르고 손뼉을 한 번 치기

쿵짝! 쿵짝!


1 분단: 나아가자 씩씩하게 대한 소년아

2 분단: 태극에 옆에 들고 앞장을 서서

3 분단: 우리는 싸우는 대한의 아들 딸

4 분단 : 무찌르고 말테야 ~~


처음 접하는 생소한 방식에 잠시 멍하니 있던 아이들,

내가 손뼉과 발 장단에 맞춰서 노래를 선창 하자

아이들도 노래와 장단을 동시에 곧잘 따라 했다.


분단별로 한 소절씩 부르자 '우리 분단이 더 잘할 거야' 경쟁심이 더해져 아이들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즐거움이 더해지며 음악시간은 어느새 레크리에이션 게임처럼 신나는 분위기로 변했다.

노래는 금세 모두에게 익숙해졌다.


손과 발, 그리고 목소리 모든 감각을 사용하는 활동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얼굴까지 발그레 상기되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선생님, 한 번 더해요!"를 외쳤다.


아마도 우리 반 음악 시간의 열기로

교내가 들썩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이들의 의욕과 순수한 열정은 내가 품고 있던 불안과 걱정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풍금 없이도 음악시간을 잘 따라와 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뿌듯함은, 실수했던 순간들마저 잊게 해 주었다.











며칠 뒤

그날은 4학년 합동 체육시간이었다.


1반 총각 선생님이 주도해 운동장을 두 바퀴를 돌고 있을 때, 우리 반 아이들이 갑자기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아가자 씩씩하게 대한 소년아

태극에 옆에 들고 앞장을 서서~~"


1반 아이들은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아이들 반응에 나는 순간 울컥했다.


운동장을 쿵쿵 울리며 손뼉을 치며 우렁찬 노랫소리가 운동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우리 반 아이들의 표정은 해처럼 환하게 빛났다.


합동 체육 시간이 끝나자

1반 총각 선생님이 웃으며 다가오셨다.


"선생님 아이들이 노래를 정말 잘하는데요?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반 음악 수업까지 맡아 주시면 어때요?"


"그럼 제가 2반 체육 시간을 맡겠습니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풍금도 못 치는 내가 옆반 음악 수업까지 맡게 되다니.'


그렇게 얼떨결에 1반 음악 수업까지 책임지게 되었다.

다른 반에 가서도 발과 손뼉 장단만 맞추면 못 가르칠 노래가 없었다.

1반 아이들도 신나게, 우렁차게 노래를 잘 부르게 되었다.


1반 음악 수업을 하면서 보니,

칠판 아래에는 길고 짧은 지휘봉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아마도 용도별로 다양하게 사용하시나 싶었지만,

우리 반은 수업시간에 칠판 글씨를 가리키는 작은 지휘봉만 달랑 하나 있었다.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던 나는 체벌을 절대 반대하는 마음이었다.






청소시간에 우리 반에 놀러 온 1반 아이가

우리 반 아이와 교탁 앞에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1반 아이가

"에게~너네 반은 무슨 매가 이렇게 째끔하냐?

우리 반은 엄청 크고 많아, 겁나게 아퍼부러!"


그러자 우리 반 아이가 응수한다.

(너네는 힘들겠다.

우리 선생님은 좋아 뭐.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는 기대도 잠시...)


웬일인지,

우리 반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한껏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한다는 말이


"야아, 우리 선생님 얼마나 무서운지 아냐?

허벌나게 무섭거든!"


그러면서 양팔까지 벌려 크게 원을 그렸다.


'응? 내가 그렇게 무섭다고?'


'매도 한 번도 들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속으로 놀랍고 살짝 억울했지만,

하지만 상대는 순수한 아이들이다.


아이들 눈에 어른은 항상 두려운 존재이니까

난 내 행동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마,

"너희 반 선생님 보다 우리 선생님이 더 대단해!

라는.. 이런 경쟁 심리는 아니었을까?"



"정희야, 그때 네 진심이 지금도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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