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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천사들 2화

4학년 2반 안 나왔습니까?

by 김사임



'아, 이 일을 어떡하나?'


당황한 내게, 교무주임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애써 감정을 억누르는 듯


"선생님, 배수가 안 돼서 공사하려고 "사용 금지"시켰는데 모르셨군요?"


미처, 그 사실을 알리 없는 내가 아이들에게 서예 도구를 씻으라고 지시를 해서, 교무실 앞이 물바다가 됐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난감한 표정의 교무주임께 사과를 하고 돌아서는데, 교무실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오셨다. 이건 학교 차원에서 큰 문제로 인식된 게 분명했다.


그렇잖아도 벅찬 일정에 더해진 부담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아. 처음부터 못 한다고 할 걸 그랬나?'


'개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선생님을 한다고...'


순간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이미 수돗가는 넘쳤고, 이제 와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42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떠올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서예 도구를 씻다 말고 멈칫거리는 아이들에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얘들아, 어서 들어가자!"


이튿날 출근해 보니, 그동안 차일피일 미뤄지던 수도 공사가, 우리 반의 "물바다 사건"을 계기로 수도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뻘쭘하게 보고 있는 나에게 한 여선생님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선생님 덕분에 잘 된 거예요.

그동안 수돗가를 못 쓰니 불편한 게 많았거든요."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선생님들의 친절한 응원이 어설픈 초자 강사의 불안함을 다독여 주는 듯했다.

역시, 가르침의 길을 걷는 분들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지도하는 인격이 스며 있는 선생님들의 태도는 점잖고 품격 있었다.






그렇게 작은 우여곡절을 하나씩 겪으며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매시간 수업하고 생소한 업무는 벅찼다.

오후가 되면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순수한 아이들과 하루가 다르게 정이 깊게 들고 있었다.


3월은 봄에 대한 기대감만 충만할 뿐, 아직 산자락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무거운 파카를 벗기에는 아직 동장군의 기세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정화라는 아이가 원피스를 입고 등교해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정화야, 추운데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지"

내 말에 바로 정화가 받아친다.


"선생님도 치마 입었잖아요! "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원피스 차림, 사실 나도 추웠다.


'아이들이 나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구나!.'


특히 여학생들은 어리지만 같은 여자 마음이란,

예쁜 거 좋아 보이는 거 따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마음가짐 행동을 각별히 신경 써야겠구나!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우리 반은 2교시 과학 시간에 몰두하고 있었다. 색종이를 오려서 어떤 형태를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중요한 건, 내가 더 수업이 재밌어서 푹 빠져 있었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린 것도 모르고, 우리는 수업 마무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운동장에서 중간 체조 음악이 흘러나왔다.

전교생이 모두 참여하는 중간 체조 시간!

우리 반만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런!!"

"커튼 닫고 모두 제자리에 앉으세요!"


이미 체조가 시작된 뒤라,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중간에 합류하는 것도 분위기를 흐리는 일이다 싶어, 그대로 교실에서 버티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잠깐의 일이겠거니 생각한 건 내 오산이었다.


"따라 라라 라라라라라

하낫, 둘, 셋, 넷..."

정확한 구령에 맞춰 국민 체조를 하는 소리가 끝나자,

'아. 이젠 됐구나!' 싶던 그때, 갑자기 교무주임 음성이 마이크를 타고 교정을 울렸다.


"에.. 오늘은, 전교생이 맡은 바 교내 청소 후, 들어가게 되것습니다."


곧이어 각 학년 반별 청소 위치가 안내되었고, 담임 선생님 인솔하에 이동을 하고 있었다.

각 학년 반을 호명하더니


잠시 후,

"4학년 2반 4학년 2반!

교무실 뒤 청소 구역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방송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자

교무주임 음성이 최대치로 올라갔다.


"4학년 2반 4학년 2반

어딨습니까?"


"안 나왔습니까?"


순간, 운동장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아마도 옆 반에서 우리 반이 나오지 않은 사실을 전달했을 것이다.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앉아 숨죽이고

운동장의 모든 내용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참 가시방석이란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다.


아무리 내가 온 정성을 들인다고 한들, 초보의 경험 없고 미숙한 티는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에헴!! "


정적을 깨고

교무주임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5학년 1반 5학년 1반"


그날 선생님들과 전교생 입에 오르내렸을

생각을 하니, 나의 한계를 실감하며

그날 밤잠을 설쳤다.






다시는 중간 체조 시간을 놓치지 않을 거라

정신 무장을 단단히 했다.

다음 날, 2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중간 체조 나가자!"


그런데

운동장엔 4학년 1반만 나와있었다.


'오늘은 우리 반이 일찍 나왔네!'


애들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서 있는데

4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선생님 토요일은 중간 체조 없어요."


애써 웃음을 참는 듯 말씀하시는 1반 총각 선생님


'아. 나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밤새 의욕을 일깨우고 아이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선생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보란 듯이 우스꽝스럽게 되고 말았다.


내 등 뒤로 웃고 계신 것만 같은 총각 선생님을 뒤로, 나는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토요일은 중간 체조가 없나 보다

우리 구령대 주변이나 청소하고 들어갈까?"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순순히 나의 지시에 따라 구령대 주변을 돌며 청소를 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니 한없이 고맙고 미안했다.


'부족한 나를 만나서 미안해 얘들아!

내가 더 열심히 할게...'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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