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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천사들 1화

아이들과의 첫 만남

by 김사임



42명의 똘망똘망한 눈망울들이 교탁 앞에 선 나를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선생님 역할을 맡게 되다니...'

얼마 전까지 나 역시 학생이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기분이었다.


아니, 정확한 직책은 분만교사 대체강사
교생은 담임 선생님 서포트만 하면 되지만,
나는 정식 담임도 아니면서 아이들을 하루아침에 통솔해야 되는 일이었다.

사회 경험이 전무했던 나에겐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20대 무모한 호기만 믿고 학교에 온 첫날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 앞에서 어색하고 당황함은 잠시 내려놓고

어디선가 본 것처럼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큼지막하게 썼다.

그때부터 웅성웅성
칠판에 적은 이름을 소리 내어 읽는 아이. 친구들하고 얘기하는 소리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자. 조용히 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됐어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담임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선생님 하고 잘 지내봅시다."

내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어설프고 달떠있었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선생님, 어디서 왔어요?"

아이들은 일제히 질문을 쏟아냈다.


하나하나 질문에 답하며 아이들과 어색한 눈 맞춤을 하였다.
아이들은 의외로 순박하고 첫날부터 정이 느껴졌다.







3월 첫 학기부터 한시적으로 4학년 아이들을 맡게 된 나는, 이른 새벽부터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낯선 도시의 초등학교에 출근을 했다.
나의 서툴고 두려운 첫날은 그렇게 혼란스럽게 시작되고 있었다.

교무실에서도 나는 낯선 이방인이었다.
경험 많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도무지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는 뒤편으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 싸이고, 운동장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진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지형이었다. 하지만 막중한 임무가 버거웠던 당시엔, 그런 풍경은 그저 차창 밖 풍경처럼 스쳐갈 뿐이었다.

한 학년에 두 클래스뿐인 아담한 학교 규모
내가 맡은 반은 4학년 2반, 학생도 42명이었다.
4학년 1반은 총각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계셨다.


20대 팔팔한 내 나이에 총각선생님에게 로망이 많을 시절이었지만, 총각 선생님 눈빛이 얼마나 강하시던지 나는 호랑이 앞에 고양이처럼 움츠리며 겨우 "안녕하세요!" 한마디만 하고 말았다.

교사 지침서대로 수업하고, 발표를 시키고, 숙제를 내주고, 검사하고... 그런 일들도 42명의 아이들을 상대하기에 벅찼지만, 가장 힘든 건 생활지도였다.

출근 이틀 뒤,

그날은 서예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서예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교무실 옆 수돗가에서 서예 도구를 씻으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반장 재형이가 교실로 다급하게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선생님, 크. 큰일났어요 물이 넘쳐요!!."


의아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 나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서예도구를 씻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

교무실 옆 수돗가는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 물이 안 빠져요!"


아이들 또한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인지 상황파악을 하려고 자세히 보니

수돗가 주변에 A4 용지 크기의 팻말이 보였다.


*사용중지*


드디어, 초보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실체를 드러낸 것 같았다.


그때 하필, 저만치서 교무주임 선생님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계셨다.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잔뜩 긴장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걸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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