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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Jul 10. 2021

퇴사를 시작하며

5년 6개월가량 다닌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물어보는 방식은 달라도, 사람들이 묻는 질문은 결국 비슷하다. "왜 그만두는 거야?", "그럼 이제 뭐하고 살 거야?" 


"왜 그만두는 거야?"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일도 좀 쉬고 싶고, 당분간 아내가 하는 일을 돕고 싶다고. 정말로 얼마 간은 아내가 하는 일로도 함께 먹고살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정말로 나 스스로에게는 왜 그만두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없었다. 퇴사 결심을 어느 순간에 하게 되었냐면은, 의외로 별 것 아닌 순간이었다. 


금요일 연차를 써서 금토일을 연달아 쉬고 출근하던 월요일, 회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아무래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사로 걸어가는 길이 너무 싫었다. 매일 걷던 길이었는데,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걸으면서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회사 그만둘까." 


내 회사 생활에 대해 말해 보자면 나는 회사 생활에 최적화된 인간이다. 규칙적인 생활도 좋아하고, 회사에서 하는 일도 꽤나 만족스럽다. 큰 불만이 없다. 정확히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정확히 같은 시간에 나의 자리에 앉으며, 비슷한 시간에 담배를 피우러 회사 밖을 나갔다가 온다. 


나는 칸트만큼이나 반복적인 일상을 좋아한다. 큰 눈이 오는 날, 큰 비가 오는 날 대중교통 시간이 어긋나면 불안하고, 회사에 지각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맡은 일에 대해서는 정확한 시간에 남들이 인정할 정도로 해 내는 것을 좋아하고, 주어진 일을 잘해 내서 회사 사람들이 인정해 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상사가 일을 줘도 싫어하는 티를 잘 안내서, 받아 오는 일도 많고, 적당히 신뢰도 받는 일등 사원 감이다. 그리고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에 밝고, 회사 뒷이야기도 좋아하며, 회사에 나와 관련된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 두려워한다. 겉으로는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라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정말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퇴사를 결심하고, 퇴사하겠다고 회사에 말했던 순간까지도 ‘난 죽어도 회사가 싫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회사 일은 즐겁다고도 생각한다.


퇴사를 결정하고,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미리 퇴사 날짜를 말해 두었고, 친구들에게도 퇴사 예정이라고 말했다. 퇴사를 전달하는 방법 역시 일등 사원답게 보고 체계에 맞춰서 팀장, 부서장, 친한 동료들 순으로 잘 전달했다. 주변 사람들이 서운함이 없도록 인간관계에 따라 하나씩 퇴사를 전달하고, 퇴사와 관련된 서류를 준비했다.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둘까? 스스로에게 명확한 답변이 없으니, 왜 퇴사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그때그때 답변을 다르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퇴사를 생각했다고 말했고, 누군가에게는 충동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누군가에는 쉬고 싶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퇴사 후의 나는 어쩌면 동네방네 허풍쟁이에 마음 가는 대로 멋대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에 대한 소문이 나쁘게 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스스로에게 명확한 답변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래야 남들에게 말할 때도 수월할 테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누가 봐도 얘는 이래서 퇴사하는구나라고 느낄 만한 것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거야.", "여행을 다닐 거야.", "글을 쓸 거야."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답변을 내놓을 수가 없다. 나도 진짜 이유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아내에게 털어놓았더니, 아내는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또 나는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하면 무척이나 어렵다. 삼십 년이 넘게 찾지 못했던 좋아하는 일을 퇴사하고 급하게 찾는다고 찾을 수 있을까. 제일 불안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점이다. 그동안은 회사 일 때문에 바빠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던 거였던 건데(표면상으로는), 나 시간이 많은데도 좋아하는 일이 없으면 어쩌지. 좋아하는 일도 없고 누워서 과자나 먹으며 드라마나 보고 있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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