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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Jul 15. 2021

퇴사를 앞두고 불안한 것들

퇴사를 앞두고 설렘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퇴사하고 할 일도 착착 다 정해두고, 어떤 불안도 없는 그런 백수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고 한다. 아무래도 나는 돈 없이 시간만 많은 백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호기롭게 퇴사를 한다고 여기저기 말해 두었는데.. 사직서도 이미 내 버렸는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번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때마다 난 이제 자유로운 인간이 될 거라고, 이왕 퇴사하기로 한 거 어느 정도 꼭 버텨 보겠다고 꼭꼭 다짐한다. 


돈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는 불안은 나태함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의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누워서 쉬는 사람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사람들처럼 활동적인 취미를 즐기는 것도 아니었고, 투잡이 유행인 요새 시대에 원잡도 벅찼다. 


퇴근하면 누워서 영상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고, 주말이 되면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맥주가 마시고 싶으면 맥주를 마시고 또 잠들고. 평일에 열심히 일했으니 이 정도는 쉬어도 된다는 해방감이 있었고, 모든 것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힘이 없기도 했다. 


이렇게 주말을 보내고 나면 죄책감이 들었지만, 월요일에 출근을 하면 그런 죄책감이 깔끔하게 사그라들었다. 


퇴사를 하면 이제 시간이 많으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고, 시간이 많으니 치열하고 열심히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그동안은 시간이 없어서 열심히 살지 못했던 거니까 말이다(그동안 미드 볼 시간은 많았다.). 


내가 원래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면 퇴사를 하지 않더라도 퇴근하고 남는 시간에 무언가를 해 보지는 않았을까?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있었다면 주말에 남는 시간만큼이라도 에너지를 쏟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무섭다. 


결국 퇴사를 해도 내 인생은 크게 바뀌는 게 없지는 않을까. 그저 그런 주말 같은 하루만 있는 것은 아닐까. 있는 돈 조금씩 아껴 쓰고, 누워서 미드 보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지면 스르르 죽어가는 건 아닐까. 


이렇게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 버리고 결국 다시 취직했는데, 원래 다니던 직장보다 좋지 않은 건 아닐까. 온갖 잡생각이 든다. 그래서 설렘보다는 불안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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