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추락
세상이 무너졌다.
이준혁.
최지원.
결혼.
"...언제부터 만나셨어요?"
내 목소리가 떨렸다.
"작년 가을부터요. 박 부장님 소개로 만났어요."
작년 가을.
우리가 설악산에 간 건 올해 1월이었다.
은정이가 이준혁을 만나기 시작한 건 1월 말부터.
"그럼..."
"네. 우리는 이미 사귀고 있었죠."
최지원이 웃었다.
"그때 설악산 갔을 때도요."
"그럼 은정이는..."
"아, 김 과장님 친구분?"
최지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좀 미안하네요."
미안?
"내가 준혁 씨에게 김 과장님한테 관심 있는 척하라고 해서 갔던 건데, 엉뚱하게 친구분이 끼어든 거예요."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뭐라고요?"
"아, 김 과장님은 몰랐어요?"
최지원이 놀란 척했다.
"부장님이랑 준혁 씨랑 다 계획한 거였는데."
"무슨 계획?"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녀가 웃으며 떠났다.
"결혼식에 꼭 오세요. 친구분도 초대하고 싶은데, 연락처 좀 주실래요?"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모든 것이 계획이었다.
설악산도.
이준혁의 접근도.
그리고 은정이가...
'은정이.'
나는 뛰었다.
사무실로 돌아가 전화를 잡았다.
은정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누군가가 받아서 오늘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김 과장님?"
은정이의 선배, 김선배였다.
"네, 안녕하세요."
"은정이 일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김선배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은정이가 지금 정말 힘들어하고 있어요. 실연당해서요."
"...네?"
"그 남자, 이준혁이라는 사람 때문에."
머리가 하얘졌다.
"알고 보니 처음부터 사귀는 여자가 있었대요. 그런데도 은정이한테 접근해서..."
"저, 저는..."
"김 과장님은 정말 모르세요?"
김선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왜 소개했어요? 은정이한테 얼마나 상처가 됐는지 알아요?"
"저는 몰랐어요..."
"중간에서 괜히 끼어들어서. 은정이가 지금 출근도 못하고 있어요. 밥도 안 먹고."
"제발... 은정이 좀 바꿔주세요."
"안 받아요. 김 과장님 전화는."
"선배님..."
"제발 좀 그만하세요."
전화가 끊겼다.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모든 게 내 잘못 같았다.
은정이를 설악산에 데려간 것.
이준혁을 막지 못한 것.
'미안해, 은정아.'
사무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김 과장 친구, 이준혁 사장한테 차였대."
"진짜? 왜?"
"원래 최지원 과장이랑 사귀는 사이였대."
"헐, 그럼 김 과장은 알고도..."
"모를 리가 있어?."
거짓말들이 진실처럼 퍼졌다.
나는 일어났다.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봤다.
창백한 얼굴.
붉게 충혈된 눈.
'정신 차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그날 저녁.
은정이의 집 앞으로 갔다.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만에 문이 열렸다.
은정이가 서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언니."
목소리가 갈라졌다.
"은정아."
나는 은정이를 안았다.
은정이가 내 품에서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언니... 미안해..."
"무슨 소리야. 네가 왜 미안해."
"언니가... 중간에서... 내가 언니한테 짐만 되고..."
"아니야, 은정아."
나는 은정이를 떼어놓고 눈을 마주쳤다.
"그 사람이 나쁜 거야. 우리가 아니라."
은정이가 고개를 저었다.
"김선배가... 그러더라."
"뭐라고?"
"언니가 나를... 그 사람한테 떠넘기려고 한 거 아니냐고. 그 사람이 원래 언니한테 관심 있었는데..."
"그건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 사람한테 관심 없었어. 지금도 없어."
"그럼... 왜 이렇게 된 거야, 언니..."
은정이가 다시 울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어둠 속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계속 되뇌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다음 날.
최지원의 결혼 초대장이 내 책상에 놓여 있었다.
표지를 열었다.
신랑: 이준혁 신부: 최지원
날짜: 다음 달 15일
초대장을 보는 내내.
손이 떨렸다.
분노.
슬픔.
무력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