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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Dec 27. 2022

브런치 공모전 탈락으로 연말이 우울하다면

브런치 공모전 결과가 지난주에 발표되었습니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분들께 축하드려요. 그간의 노고가 결실을 맺은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수상자들에게 보내는 축하의 마음과는 별개로 브런치 공모전에서 안 됐다고 낙담한 분들이 계실까 해서 글을 씁니다. 저 또한 응모는 했지만 안 됐어요. 예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브런치 공모전 탈락이 제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작년에 브런치 공모전에서 떨어진 원고를 갖고 투고를 했었는데 기대도 안 했던, 너무 훌륭한 출판사에서 글이 정말 재미있고 좋다며 연락을 주셨어요. 에디터님이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시며 출간도 제안하셨습니다. 최종 기획의 방향이 좀 달라서 불발되긴 했지만 저에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 원고가 그렇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낭비하는 활자는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우리는 평생 나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쓸모없는 인간'이란 말만큼 모욕적이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말이 있을까요? 그러나 박완서 작가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쓸모없는 사람은 없으며, 세상이 그의 쓸모를 아직 발견해 주지 못했을 뿐이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모전에 응모했던 분들의 원고 또한 마찬가지예요. 아직 그 글을 알아봐 주는 이를 만나지 못했을 뿐 쓸모없는 원고라고 누가 감히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수험생인 저희 아이는 조금 특별한 과를 준비하는데요, 합격 여부를 가르는 실기 시험이 대부분 글쓰기 전형입니다. 관련 입시 정보를 모으기 위해 비슷한 과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은 입시 온라인 카페를 들여다보니 스무 살이 채 안 된 어린 예비작가들의 고민이 한가득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게시글이 눈에 띄었어요.


내용인즉 '글쓰기가 너무 좋아서 고등학교 내내 문예창작과 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실기시험을 보는 수시 전형에서 계속 떨어지니 너무 자신감이 없어졌다. 이 와중에 정시 준비를 위해 또 글쓰기를 연습하려니 글도 잘 안 써지고 친구에게 보내는 간단한 편지조차 안 써진다. 아무것도 모르고 글쓰기를 할 때는 정말 행복했는데 이제 글쓰기가 나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 같다.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은 건지 그조차 확신할 수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글이었어요.


아이에게 이런 글이 올라왔노라고 말해줬어요.

"그 학생이 안쓰러웠어. 글쓰기가 자기를 오히려 망가뜨리는 것 같다고 하는데 그 말이 참 다가왔어."

"엄마, 글쓰기가 문제가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제인 거야?"

"입시 글쓰기가 문제인 거야. 입시 글쓰기가 그 사람을 지치게 하고 망가뜨리는 거지."


Photo by JOHN TOWNER on Unsplash

듣고 보니 수긍이 갔어요. 글쓰기가 아니라 입시 글쓰기, 누군가를 제치고 반드시 뽑혀야 하는 선발의 장에서 하는 글쓰기가 그를 지치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시 글쓰기에서는 진정성 있게 나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대학에서 추구하는 인재상과 맞아떨어지게 써야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모전,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글쓰기 대회도 그렇습니다. 수상하기 위해서는 실력과 재능도 겸비해야 하지만 내 글이 각각의 대회에서 추구하는 기획이나 방향성과 맞아야 합니다. 또한 심사자의 주관이나 취향이 완전히 배제된 객관성이란 건 존재하기 힘들기에 어느 정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도 작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래서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으로 세계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음악가로서 해야 할 대단한 업적이란 어디 콩쿠르 나가서 운 좋게 1등 하는 게 아니라 음악회를 보러 오기 힘든 분들에게 찾아가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같은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운'으로 1등 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이야기겠습니까.


하루 12시간씩 연습하고도 대회에서 연습한 만큼 실력이 안 나왔다며 아쉬워하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피아노 선율의 미학이 단순히 기교로 완성되는 게 아니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단테의 신곡을 외울 만큼 읽었다는 인터뷰에서도 피아노를 대하는 그의 진지한 자세를 엿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자신에게 한치의 느슨함도 허용하지 않는 그가 콩쿠르 수상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그저 겸손에서 나온 형식적인 말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만으로 스무 살이 안 된 나이지만 그가 꿰고 있는 세상 이치는 탁월해 보입니다. “우승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며 우승했다고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니다”고 하며 그저 매일 하는 연습을 똑같이 하는 데 매진하는 그의 자세를 저 또한 본받고 싶습니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지만, 그 작품이 첫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대회나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건 기쁘고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게 기회가 되어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또 너무 낙담할 일도 아닙니다. 수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며 마찬가지로 수상하지 못한 이들도 똑같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내 원고의 쓸모를 특정 대회의 수상으로만 입증하려 하지 말고 일단 원고의 첫 번째 독자인 나부터 설득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사실 우린 알고 있잖아요. 원고를 쓰다 보면 느낌이 옵니다. 정말 만족스러운 글인지, 어딘지 미진하고 부족하게 느껴지는 글인지. 12시간씩 연습하고도 부족하다고 느낀 피아니스트는 관객이나 심사위원이 아니라 본인이 정한 완성도가 중요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논하기 이전에 내가 정말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는지, 내 글이 나를 만족시키는지 맹렬하게 파고드는 작가라면 수상 여부와는 별개로 그의 글은 언젠가 독자들에게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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