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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Sep 18. 2022

슈퍼두퍼 버거
Super Duper Burgers

해외편

2012년의 어느 봄날, 무작정 아프리카행 편도 티켓을 끊고는 첫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와. 너 같은 놈은 처음 봐"라고 말하는 듯한 인사팀 직원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표가 진짜인지 앞뒤로 유심히 보던 것도 기억이 난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지 3년 6개월이 된 시점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을 시작으로 시작된 그 여행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중미, 미국을 거쳐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총 7개월이 걸렸다. 


언젠가 몇 번이라도 다시 느끼고 싶은 그 7개월의 이야기가 내 첫 번째 에세이 출판이었다. 사표를 던지고 세계일주를 하던 당시의 즐거움은 하루 종일이라도 얘기할 수 있겠으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식도락이다. 음식 전문가는 아니지만, 45개국을 여행한 경험을 토대로 현지 음식이 특히 인상 깊었던 국가를 추리자면 멕시코, 베트남, 이탈리아다. 대륙도 다르고, 인종도 다른 이 나라들 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버거의 불모지라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파니니 샌드위치를 먹느라 정신이 없고, 베트남은 아직 버거가 뭔지 잘 모르는 느낌이다. 멕시코는 타코의 지배력이 너무 강해서 버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오히려 미국이 타코에 점령당할 위기다. 이 나라들을 여행할 때는 그들의 음식에 중독되다시피 빠져들다가도, 돌아올 때면 버거 일기에 단 하나도 추가하지 못한 점이 늘 아쉽곤 했다.


내가 미국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버거의 천국이다. 맛있고, 신선하고, 가성비도 최고인 버거 가게들이 굉장히 많다. 내가 먹어본 버거 전문점만 해도 쉑쉑, 인 앤 아웃, 데니스, 잭 인 더 박스, 해빗, 웬디스, 알비스, 카를 쥬니어, 파이브 가이즈... 끝이 없다.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글로벌 프랜차이즈만 나열해도 이 정도인데, 지역 명소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카페보다 많을지 모른다. 그 중에서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 버거는 아마 쉑쉑과 인 앤 아웃일 것이다(쉑쉑은 몇 해 전 한국에 진출했지만). 특히 미국 서부를 여행해본 한국인 10명에게 묻는다면 9명 정도는 인 앤 아웃을 추천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 나머지 한 명이다.


세계일주를 하던 당시 마지막으로 방문한 도시가 샌프란시스코였는데, 거기에도 인 앤 아웃이 있었다. 그것도 관광객이 제일 많은 Fisherman's Wharf에 있다. 관광객이라면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는 화려한 간판을 뽐내고 있어, 버거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들어가고 싶게 생겼다. 


그러나 나는 묵묵히 그 앞을 지나쳐 Ferry Building으로 향했다. Ferry Builing 1층 아케이드 상가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핫한 가게들이 모여있는데, 블루보틀을 처음 본 곳도 여기다. 상가 내의 그 많은 사람들이 죄다 파란 병이 그려진 똑같은 종이컵에 든 무언갈 마시고 있었는데, 그게 블루보틀의 시작이었다.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임시 가판대 같은 작은 매장이었지만 커피를 주문하기까지 30분은 족히 걸렸다. 당시만 해도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을 때였지만, 적어도 블루보틀의 커피가 무언가 특별하다는 건 느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블루보틀은 민트 스트리트에 공식 1호점을 열었다. 이제는 스타벅스와 쌍벽을 이루는 커피 기업이 되었지만, 아직도 페리 빌딩의 매장은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구글에서 검색하면 페리 빌딩이 본점으로 나온다. 


블루보틀을 나온 발걸음은 차이나타운을 지나 마켓 스트리트로 향했고, 거기서 내 인생 최고의 버거와 마주했다. 그 나머지 한 명이 추천하는 미국 서부의 명물, Super Duper Bugers 다. 그때가 2013년 2월이니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10년 전의 일이다. 이제 와서 그때의 맛이 기억이 날리 없다. 하지만 그때의 기분만은 아직도 분명히 기억한다. 슈퍼두퍼에는 버거 메뉴가 하나밖에 없는데, 버거를 먹으면서 계속 어디선가 먹어 본 맛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손목으로 흐른 고깃기름을 닦아내면서도 그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될 때가 있는데, 슈퍼두퍼의 버거가 그랬다. 결국 어디서 먹어본 맛인지 비밀을 밝히지 못하고 귀국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회사 동기 중에 한 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장소는 가산동의 어느 소고기 집이었다.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먹는 한국식 얇은 소고기는 마시멜로만큼이나 달았다. 씹을 것도 없이 입에서 녹는 듯 사라졌는데, 순간 슈퍼두퍼 버거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서 먹어본 그 맛은 바로 한국에서 먹는 소고기 맛이었다. 스테이크와 달리 얇게 썰어 불판에 놓은 지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바로 입안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그 맛. 너무 비싸서 회사 돈으로나 먹던 그 맛. 한국을 떠난 지 7개월 째였고, 귀국을 하루 앞둔 날이었기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 머리는 이대로 영영 돌아가지 않고 계속 여행을 하고 싶어 했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누구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친구와 소고기를 먹은 그날 이후로, 나는 슈퍼두퍼에 갔을 때의 그 기분을 기억하려고 제법 애를 썼다.


10년 전 찍은 사진을 이제 다시 보니, 버거 속에 보이는 패티의 단면이 정육점의 불빛과도 같은 분홍색이다. 스테이크처럼 살이 가득 차있지는 않지만, 얼기설기 엮인 고기 틈 사이로 육즙이 반짝거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외의 것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소고기를 먹을 때 긴 시간에 걸쳐 정성스레 먹지 않듯이. 다 먹고 나면 입을 계속 쩝쩝거리게 만드는 고기 본연의 맛만 혀 끝에 남듯이. 치즈와 양상추는 이 음식이 버거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뿐, 처음부터 끝까지 패티에서 한국의 소고기 맛이 났던 기억만 남는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묘한 타이밍이었다. 다운타운에 있는 호스텔 키친에서 맥주와 간단한 스낵으로 저녁을 때웠던 그날이 7개월간의 세계일주 마지막 날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어느 바에 앉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버거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마지막 버거의 이름도 맛도 기억나지 않지만 다시 한번 슈퍼두퍼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은 난다. 


10년이 흐르는 사이 몇 번이고 미국을 방문했지만 이상하게 샌프란시스코와는 거리가 있었다. 몇 명의 친구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고, 그때마다 나는 슈퍼두퍼에 꼭 가보라 당부했다. 한국의 소고기 맛이 난다는 얘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버거를 좋아하던 아니던, 대부분은 매우 만족스러운 안부를 보내왔다. 그 사이 샌프란시스코 외곽에도 몇 개의 지점이 더 생긴 모양이지만, 슈퍼두퍼는 여전히 캘리포니아 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인기쟁이 이웃이었던 블루보틀은 한국에도 매장이 10개나 생길 만큼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는데 말이다. 해외 편을 쓰면서 괴로운 점이 이 부분이다. 글을 쓰다 보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한편 얼마 전에 슈퍼두퍼의 국내 진출이 임박해졌다는 기사를 봤다. 그 순간 첫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세상 물정 모르던 풋내기가 떠올랐다. 세계일주를 하겠다며 사표를 냈던 풋내기 말이다. 대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재의 삶에 적응하면 과거의 내 마음과 기분 같은 것은 쉽게 잊어버린다. 예전에 내가 어떻게 세상을 대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 무엇을 진정으로 원했는지를 잊거나 왜곡한다. 순식간에 세계일주를 했던 7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리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막상 슈퍼두퍼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여기에 쓴 나의 과거 기억들이 현재의 왜곡일까 봐 두렵다.


슈퍼두퍼의 국내 진출이 현실로 이루어 질지는 모르겠지만, 확신이 드는 것도 있다. 이 부분은 10년 전 당시의 일기를 그대로 옮기겠다.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슈퍼두퍼를 안 간다면 바보다. 그냥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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