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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AWRIKER Jan 13. 2021

어쩌다 러너

주말 아침, 간편한 옷차림으로 동네 공원을 찾았다.

날씨가 제법 더워지고 있었던 초여름의 문턱이었지만 아침 공기는 시원해서 상쾌한 기분이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기에 모처럼 10km 러닝을 해보기로 했다. 평소 페이스대로라면 대략 55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주말 늦잠도 포기하고 앞으로 1시간 동안 쉼 없이 달릴 러닝이 부담스러울 만도 했지만 오히려 이렇게 달릴 수 있음을 감사하며 힘차게 나아갔다.




러닝에 대한 관심이 언제부터 생긴 건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야근으로 나날이 쇠약해져만 가는 기력을 부여잡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었는지, 퇴근 후 잦은 술자리와 불규칙적이고 기름진 식단으로 늘어만 가는 뱃살을 뺄 마지막 방책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남들이 보기에 건전하고 건강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비치길 바랐던 욕심이었는지...

아무튼 나의 주말 아침 달리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러닝 초기에는 그동안 내가 도전해 왔던 다른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한두 번 하다가 금방 그만 두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미 나는 이 분야에서 무수한 전과가 있었던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몸짱이 되겠어!'라는 다짐과 함께 등록했던 피트니스센터는 결국 두어 달도 채 나가지 못하고 1년 치 회원비를 고스란히 바친 호갱의 오명을 써야 했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골프 정도는 배워둬야지'라는 상사들의 말에 솔깃해 장비부터 구매했던 골프는 필드 한번 나가는 것을 끝으로 값비싼 장비들이 창고 안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1년 치 회원권, 장비 풀세팅 등 운동을 시작함에 있어 쉽게 포기하지 못하도록 나름의 배수진을 친 회심의 전략들은 매번 무참히도 무너졌고, 나는 끈기도 근성도 없는 형편없는 존재라는 사실만 재차 확인하곤 그렇게 또다시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회귀하곤 했다.


하지만 다행히 러닝은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운동이 아니었고, 대단한 의지가 요구되는 운동 또한 아니었다. 그냥 운동화에 편한 복장으로 밖에 나가 달리기만 하면 되는 '심플함' 그 자체였다.

물론 지금이야 좋은 러닝화에 양말 색상까지 고민하며 멋진 복장으로 웨어러블 기기를 장착하고는 잘 알려진 러닝코스를 찾아다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거창했던 건 아니었다. 집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운동화에 목 늘어난 츄리닝을 입고 동네 공원을 무작정 뛰었을 뿐. 호흡법이니 주법이니 러닝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기에 오히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주말 아침 달리기는 용케 이어졌고,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위해 마라톤 대회까지 참여하게 되면서 러닝이라는 것이 인생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마라톤 대회를 검색하고, 사이트를 방문해 접수하면 대회가 열리는 날 전후로는 약속도 잡지 않고 일종의 관리 모드에 들어갔다.

매월 계획되어 있는 마라톤 대회는 한 달 스케줄을 좌지우지하는 최우선 일정이 되었고 대회에 참가할수록 하나, 둘 모인 완주 메달은 소소한 성과이자 기쁨으로 계속해서 러닝을 지속할 수 있는 유쾌한 원동력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러닝을 한다고 하면 체력 관리를 위한 운동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그 목적이 가장 컸던 건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몸 쓰는 일에 부담을 느끼면서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지고, 과하게 활동한 날은 어김없이 온몸 구석구석이 아파왔다. 급기야 가만히 있는 게 되려 건강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으니 가히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학생 때만 해도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측에 속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운동장은 언제나 설렘의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뛰어놀았던 기억이 가득하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켜켜이 쌓여가는 나이와 반대로 점차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체력을 보며 삶이란 RPG 게임 속의 캐릭터처럼 경험치가 쌓인다고 무한정 레벨업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인생 그래프가 '젊음'의 정점을 찍고 난 뒤, 그 후에 맞이한 모든 날들은 항상 그 이전 날보다 더 지치고 힘들었다. 그 고단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잠을 조금 더 자두 거나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정도였지만 이 또한 피로를 해소하는 효과적인 휴식 방법은 아니었다.

학생 때의 팔팔했던 체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해도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늙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였을지 모른다. 주말 아침의 단잠도 포기하고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 나에게 있어 러닝은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달린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아를 회복하는 일종의 수양이자 수련이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달리는 동안 눈 앞에 보이는 복잡한 광경에 시선을 빼앗겨 자칫 산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심장의 두근거림, 호흡의 높고 낮음, 무릎에 전해지는 울림과 발바닥에 느껴지는 마찰, 볼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과 햇빛의 따사로움, 온몸에 전해지는 그날의 온도와 습도...

평소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던 자신을 둘러싼 모든 디테일에 오롯이 빠져들다 보면 스스로에게 완전히 몰입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러닝을 통해 나만의 리듬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잠시 잊고 있던 '나다움'을 찾아 온전한 내가 될 수 있었다.


체력 관리의 목적, 수양으로서의 목적... 그리고 러닝에 대한 나의 마지막 목적은 바로, 완주 후 온전히 느끼게 될 '성취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과연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열심히 준비한 보고서에 대해 상사로부터 칭찬의 말을 들었을 때?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명당자리를 광클 끝에 겨우 예약했을 때? 레시피만 따라 했을 뿐인데 나름 그럴싸한 음식이 만들어져 괜히 으쓱할 때?

사실 우리는 이런 소소한 것들에 대해 '성취'라는 훈장을 달아주지는 않는다. 왠지 '성취'란 올림픽 정도의 큰 대회에 나가 메달 정도는 따거나, 세상을 뒤흔들 만한 연구결과를 발표해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거나, 수많은 독자의 마음에 감동의 쓰나미를 일으킬 정도의 글을 쓸 정도가 되어야 가히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성취'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높은 기준의 부담감 때문에 소소하지만 자기 힘으로 애써 이룩한 성과에 대해 너무 인색하게 굴었던 건 아니었을까?

빠르지 않아도, 멀리 달리지 못해도 어제보다 나아진 나의 러닝을 보며 작지만 아주 잦게 기분 좋은 성취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나에게 러닝은 수 없이 나약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매 순간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그것은 내 자존감의 단단한 기초가 되었다.




'러너'라는 단어에 대해 특별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단어를 접할 때 느껴지는 설렘과 즐거운 두근거림이 오늘의 나를 기꺼이 밖으로 나와 달리게 만든다.


좋은 인연이란 언제나 그런 것 같다. 우연인 듯 찾아왔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그 무엇이 되는...

어쩌다 '러너'가 되었지만, 애초부터 계획되지 않았기에 소중하게 찾아온 인연처럼 그렇게 러닝은 내 삶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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