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사람의 이별연습 이야기
연말이 되면 회사는 인사이동으로 어수선해진다. 본격적인 발령이 나기 전 티오가 어디에 났는지 발 빠르게 확인한 사람들은 미리 떠날 준비를 하고, 아직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곁에 있던 나조차 덩달아 불안해진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무방비 상태의 나를 마구 괴롭혔는데, 지난 몇 년간 그랬다. 입사 2년 차, 갑자기 동기가 시험을 보겠다며 그만뒀고, 입사 3년 차에는 또 다른 동기가 대학원을 가겠다며 퇴사 절차를 밟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친구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뒷걸음치기 바쁜 나한테 있어 그동안 만났던 직장동료부터 친구들, 연인까지,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가 훅 친근하게 다가오면 차마 눈을 못 마주쳐 벽을 바라보고 말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어렵게 곁을 내준, 온갖 정을 줬던 사람들이 떠나갈 때면 이별은 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이들이 떠난다고 해서 다시 안 보는 것도 아닌데, 이젠 자주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유독 힘들었고, 그 후유증도 오래갔다.
지금은 벌써 한 직장에 입사한 지 n년째라 사람이 떠나면 ‘가나보다’, 오면 ‘오나보다’ 싶지만, 한때는 이별을 잘하고 싶었다. 좋은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문득 생각나더라도 ‘그땐 그랬지’라며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다. 여전히 이별은 어렵지만, 그래도 나만의 이별연습을 통해 천천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맹자가 이별하는 법
맹자에 군주와 신하가 이별하는 법이 있다.
맹자가 말했다.
“신하에게 어떤 일이 생겨 그 나라를 떠나게 될 경우, 군주는 사람을 시켜 그를 인도하여 국경을 넘게 하고, 또 그가 도착할 곳에 먼저 사람을 보내어 그에 대해 좋게 소개해야 합니다. 또 나라를 떠난 지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제서야 그에게 내렸던 토지를 환수해야 합니다. 이것을 일러 세 가지 예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신하가 옛날에 섬기던 군주를 위해 상복을 입을 것입니다.(생략)”
맹자 이루 하, 8.3 옛 군주를 위해 상복을 입는 경우 p.290
맹자는 군주가 신하를 떠나보낼 때 말없이 고이 보내고, 새롭게 가는 곳에 좋은 평가를 남겨야 하며, 떠나보낸 사람을 3년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현대의 조직에서 리더가 조직원을 떠나보낼 때 이렇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다. 그러나 나는 리더가 아니고, 나와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과는 더더욱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맹자의 이야기 중 필요한 부분만 취하기로 했다.
먼저, 말없이 고이 보내주기로 했다. 친구와 동기들과의 이별은 내게 갑작스러운 소식이지만, 그들은 덜컥 결정한 게 아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테니 나는 그저 옆에서 지지해주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왜 떠나?” “가지 마”라는 말들이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젠 알기에, 그런 말들은 속으로 삼키고 시니컬한 말과 위로보다는 새로운 길을 응원하기로 했다.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마음 뒤편엔 부러운 마음이 자리 잡았기에 이별이 어렵다는 걸 느꼈다. 회사를 퇴사하고 완전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멋져 보였고, 내게는 동경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 출발의 결과를 떠나는 동료들도 나도 알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 부러운 마음 다 접어두고 다 잘될 거란 마음으로 고이 보내주기로 했다.
또한, 떠나더라도 연결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3년간 신하의 자리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맹자의 말을 동료와 친구와의 관계로 비춰보았을 때 언제든 상대방의 연락이 오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멀리 떠나면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이지만, 연락이 오면 반갑게 인사하고, 좋은 소식은 축하해줄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다. 어쩌면 먼 훗날 내가 상대방에게 혹은 상대방이 내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상상도 해보면서 말이다. 예전만큼 자주 이어지지 않아도 사이가 멀어졌다는 건 아니기에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내가 택한 이 두 가지 방법이 식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이별의 순간이 오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처럼 바로 되지는 않는다. 한동안 빈자리가 오래 생각나고, 바쁘단 이유로 혹은 내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떠난 이들을 소홀히 대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하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맹자의 이별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이별을 대하는 방법
노력하는 만큼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각자 인생 그래프대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멀어지는 인연도 생기고, 아픈 이별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나는 왜 유독 매번 이별에 고통스러워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를 떠나갈 거란 감정이 지배하기 때문이란 걸 그리고 그 빈자리를 한동안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힘겹게 하기 때문이란 걸 여러 번의 이별이 반복된 후 알게 됐다.
이럴 때 엄마가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별이 있어야 새로운 만남이 있다." 마음의 집착과 미련을 버려야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라며 엄마가 늘 일러 주던 말이다. 그러나 엄마의 말은 너무나 이론적이라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쉽사리 그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예전에 사주명리학 강의를 들으며 엄마의 말을 이해했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음과 양이 좋든 싫든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점이다. 새벽이 되어 양기가 차오르면 어느덧 낮이 되어 양기가 충만해진다. 양기가 정점을 찍을 때 음기가 차츰 올라오며 저녁을 맞이하고, 나중엔 음기가 가득 올라 밤이 찾아온다. 그러다 다시 새벽이 오고, 낮이 되고, 저녁이 되어 밤이 찾아온다.
하루가 음양의 반복이라면, 사람 역시 이별과 만남의 연속으로 이뤄져있다. 이제 나는 이별은 아프지만, 하나의 이별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내 세계를 잘 건설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덜 아플 거 같았다. 그리고 오히려 남는 사람이 더 용기 있는 거라고, 떠나는 사람보다 한 자리에 대해 더 오래 고민하는 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반복적인 이별로 감정이 무뎌지고, 이별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떤 이별은 오랜 생채기를 내기도,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이별이 문득 떠오른 순간에도 그 이별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떠난 이의 행복을 바란다면 이미 충분히 이별을 잘 대하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