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과 불안은 사랑의 양면

왜 나는 번번이 불안한 사랑을 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단상

by 살구민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491


올해 결혼했지만, 불안에서 빠질 수 없는 연애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주인공 테레자의 생각처럼 '사랑'은 내가 떨치지 못한 불안 중 하나였다. 20대 연애는 늘 불안의 연속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닐까 의심부터 했으니 말이다. 비록 상대방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토마시처럼 바람을 피우거나 믿음을 져버린 적이 없음에도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상대방의 사랑만을 갈망했다.


지난 일기를 보며 찾은 일화가 있다. 소개팅으로 만난 지 2번밖에 되지 않는 상대였다. 몇 시간씩 답장이 없는 그에 대해 나는 ‘내게 더 이상 관심이 없다면, 그만 만나자고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내게 조금이라도 호의를 보이면 쉽게 마음을 열었기에, 나만 매달리는 것이 벌써 지치고 힘들다는 이유였다. 답장이 오지 않는 사이 나는 혹여 잘못 말한 것은 없는지, 내가 재미없었나를 줄줄이 고민하며 자기검열을 시작한다. 그러다 연락이 오면 그제야 안도감이 들며 불안이 가라앉는다. 나중에는 연락에 목매달지 않게 되었음에도 상대방이 아무 이유 없이 몇 시간씩 연락이 닿지 않으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 애써 시시한 척 또 그를 뻥 차버릴 전략을 홀로 세우고, 그러면서도 계속 폰을 흘깃흘깃 보며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렸다.


이렇게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그동안의 연애에 실패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테레자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당시의 나는 내가 주체가 되어 상대방의 존재로 행복함을 느꼈다기보단 ‘사랑받길 원하는 나’에 매달렸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꾸미기 바빴다. 이 역시 ‘내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말한다면 상대방이 좋아하겠지?’라는 온전히 내 관점에서만 바라본 일방통행으로 말이다. 결국 사랑을 얻으려던 나의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에게 ‘너도 이렇게 해줘’라는 요구와 기대를 부추겼다. 상대방과 내 사랑의 무게를 재려고 했고, 동일하지 않다 느끼면 의심했다.


이토록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사랑의 온도 차이는 어쩌면 나의 착각일 수도, 혹은 정말 무게감이 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애정에 대한 갈망과 불안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내면을 평생 솔직하게 표현한 호퍼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며 '사랑'이란 어쩌면 나에 대한 확신과 솔직함으로 시작되는 거란 생각을 문득 했던 기억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5살 때부터 미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지만, 미대를 졸업하고도 약 10년 동안 작품을 한 점도 팔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꾸준한 연습과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며 본인의 화풍을 찾았고, 아내의 도움으로 크게 성공한다. 호퍼의 유명한 도시 그림을 보면 나는 늘 쓸쓸하다고만 생각했다. 특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보면 그랬다. 어두운 거리 속 홀로 영업 중인 가게, 그 안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 점원과 얘기하는 듯한 부부의 모습을 보다 보면 고독하고도 외로운 도시의 뒷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전시 끝자락에서 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에드워드 호퍼 연구자들이 그런 작품들은 오히려 호기심을 유발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호퍼 지인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굉장히 과묵한 사람이었으나,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이러한 호퍼의 과묵한 내면은 결혼 초반, 아내인 조세핀과의 잦은 싸움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그의 그런 기질이 독자적인 장르를 탄생시켰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역시 그의 시선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저 사람들은 왜 밤을 지새우고 있는지, 저 가게로 들어가는 문은 어디 있는지, 저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등등 자세한 설명이 없는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무한한 상상을 펼칠 수 있다. 호퍼는 본인이 관찰한 도시의 분위기, 사람들의 감정을 오로지 빛과 그림자를 통해 표현했다. 아무리 과묵하다 한들 본인 작품이 팔리지 않았던 시기에 그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부 유행에 맞춰 그리기보다 “I suppose it’s just me(아마 그게 저 자신이기 때문이죠)”라는 태도로 솔직하게 그리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향해 나갔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솔직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본인이 싫어하는 모습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진짜 내 모습을 보고 도망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여 솔직해지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관계에 대한 불안만 증폭됐다. 그들이 날 떠날지 두려웠고, 또 외로워질까 무서웠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 불안증에서 벗어날 방법은 관계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기대를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길밖에 없음을 차차 알아가고 있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가 주변의 평가에 요동치지 않고, 본인의 내면과 대상에 대한 시선을 솔직하게 화풍으로 표현했듯이 말이다.


어렸을 적 나는 결혼하면 이러한 불안이 다 떨어져 나갈 줄만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부싸움을 하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툭 튀어나올 때면 감정이 다 가라앉은 후에 ‘내가 싫어져서 떠나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존재만으로 내게 안정감을 주는 상대방에게 내 기준으로 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 중이다.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또 바라보고, 상대방과 대화하며 맞춰가야겠지만, 이마저도 사랑의 형태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갈망과 불안은 사랑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감정인가? 그렇다. 하지만 극복할 수 있는가? 이 역시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단, 나를 먼저 있는 그대로 안아준 후, 상대방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물론, 여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내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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