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혹은 배려
굳이 미안한 마음을 분류해보자면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깝지 않을까.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한 적이 있다. 이 마음은 사소한 다툼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혹은 시간이 흘러 먼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옅은 마음조차도 미안한 마음에 가깝다.
나에게도 미안한 마음은 수시로 찾아오는 편이다. 과거를 자주 회상해보는 탓에,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굉장히 자주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조금만 더'라는 한편의 미련은 이 마음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언제는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어 편지를 써서 친구 집 우편함에 꽂아놓은 적도 있다. 너무 시간이 지난 일이라 친구는 놀랐지만, 나름대로 청산하는 과정이었다.
얼마 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조금 놀랐던 일이 있다. 친구 말로는 내가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찾아와 술을 먹자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다 둘이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짚던 와중에 불현듯 내가 '미안하다며' 한번 안아보고 싶다고 한 것. 그리고는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를 꼭 안아줬다는 나름 훈훈한 이야기였다.
나에게 이렇게 따듯한 면이 있구나 하는 사실은 둘째 치고,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내가 그 친구한테 뭐가 그렇게 미안했는지 '그 마음'을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뭐가 그렇게 미안했을까. 내 속에서 어떤 마음을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아온 걸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도, 알 수 없는 마음으로 행동했다는 점에 대해 또다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 웃지 못할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수시로 갖게 되는 미안한 마음의 근원은 아마도 책임에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응당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꼿꼿한 마음이 있고, 매번 그 기준을 채우지 못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상대가 아닌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이렇게 대해야 한다는 기준을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차게 된다. 애초에 그 기준들이 너무 엄격했을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더 미안해야 편한 구석도 있다. 누가 나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좀 더 맞춰주는 쪽이 익숙하다.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상대를 더 이해하려는 태도가 생겨나고, 배려가 더 쉽다. '미안하니까'라는 문구를 붙이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행동도 기꺼이 할 수 있다.
너무 내 자신을 조아리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미안한 마음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안 좋은 마음과 말들로 가득한 일상에서 미안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친구를 꼭 안아줄 수 있는' 따듯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어제에 대해서 조금 더 미안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