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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은 Jan 11. 2020

눈을 볼 수 없다. 이맘때쯤이면 도로와 인도 한켠에 잔뜩 때 묻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얼마큼 단단하게 얼었느냐에 따라 눈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친구와 나란히 걷다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친구에게 꽁꽁 뭉친 눈을 던지기도 했다. 눈이 오는 밤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사람 만드는 일은 일종의 의식이었고, 다음날 아침 출근, 등굣길에 지난밤을 견뎌낸 눈사람을 보면서 괜스레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때로는 어마어마한 폭설로 발길이 붙잡히기도 했지만, 흩날리는 눈발은 겨울이 왔구나를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두터운 털모자, 털목도리와 털장갑은 멋이라기보다는 눈 오는 날 의례적으로 걸쳐줘야 할 상징이었다. 털로 무장할 필요가 없을 만큼 따뜻해진 날씨가 밉지는 않다. 그럼에도 유난히 더 쓸쓸하고 허전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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