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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자꾹 Oct 14. 2024

잊지 않기로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한강 작가의 글은 늘 아프다. 힘들다.     

 

『소년이 온다』를 읽다가 너무 울어 눈가에서 진물이 날 지경이었다. 소년의 이야기가 너무 생생해서 광주를 찾아야 했다. 결혼 20주년으로 전주와 광주를 2박 3일로 다녀왔다. 광주 전남대 앞에서 518번 버스를 타고 ‘518 기념 공원’에 다녀오고 나서야 소년의 아픔을 손톱만큼 알게 되었을까?     


동물권과 환경을 생각하다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그이의 다른 작품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 처음 한강 작가의 글을 읽는 이들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읽겠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한강, 그가 아픔을 다루는 방법은 다르다. 에둘러 말하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데 너무 아프다. 가슴이 저민다. 나와 다르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역사적 사실을 이토록 아프게 그리고 고스란히 자신의 글로 녹여내는 이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의 작품들과도 결이 다르다.   

   

지난해 그가 제주 4.3에 관한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또 나를 얼마나 후벼 팔지 걱정하면서 고민하다 책을 주문했다. 책의 앞부분은 광주 이야기를 끝낸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헷갈렸다.     


주인공 ‘인선’은 성인이었고 또 제삼자였기에 『소년이 온다』 때처럼 그렇게 펑펑, 꺼이꺼이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아픔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도 영화 <지슬>도 떠올랐다. 제주 4.3은 여전히 우리에게 아픔이다. 


  

아무 힘도 없고 별 의지도 없어 보이던 인선의 엄마에게는 자식에게조차 말하기 힘든 아픔이 있었다. 그 아픔 때문에 평생 꺼져가는 삶을 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엄마는 현실을 마주하고자 했다. 끝까지 찾아야 한다고 그래야 잊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인선과 경하의 프로젝트명도 ‘작별하지 않는다’가 되었나 보다.   

   

혼령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서 말한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지면 비로소 혼령이 사라지는 거라고. 인선의 엄마는 그래서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빠를 찾으려고 애썼고 기부단체에 꼬박꼬박 기부도 했었나 보다. 인선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나서, 한 해 두 해 미루었던 그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갈 수밖에 없었나 보다.     


인선이 기르던 앵무새 아마가 죽었지만,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아마는 열심히 살고 있다. 커다란 나무를 절단하는 작업을 하다 손가락을 잃고 접합수술을 한 인선. 서울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멀쩡하게 경하의 옆에서 아픈 과거를 토로한다. 인선은 경하의 말대로 죽은 걸까. 인선의 앵무새 ‘아마’를 구하러 가던 경하가 폭설에 갇혀 죽은 걸까? 아니면 둘 다 죽어서 만난 걸까.  

   

두 번을 읽었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의 아픔을 작별하지 않고 마주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은 여실히 드러난다. 힘들어도 아파도 한강의 글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다음엔 또 얼마나 자신의 속을 긁어내며 또 다른 아픔을 전달해 줄까.     


처음엔 한강 문체 특유의 아픔 때문에, 선뜻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몰입한 후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었다. 읽는 내내 떨렸던 것 같다. 자꾸만 잊어버리는 것이 미안해서, 글로 전해지는 아픔이 너무 서늘하게 다가와서, 글을 쓰면서 작가는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 그래서 사랑하기로 했다. 잊지 않을 것이고,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떨림이 있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한강의 작품은 나에게 그렇다.


지난 5월에 다녀온 제주 서귀포 표선 바닷가.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해변이 떠오른다. 그 아픔에 숙연해진다.          



지난겨울 ‘보물찾기’ 책 모임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었다.     

 

작품이 다루는 내용과 주제도 힘든데, 작가의 문체는 우리를 더 힘겹게 만들었다. 토론 시간 내내 우리는 책의 내용보다는 제주의 아픔과 우리 현대사에 대해 에둘러 말하곤 했다. 한강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며 또 얼마나 가슴을 헤집었을까. 작품 속의 주인공 경하처럼 잠도 못 자고 늘 유언을 준비하고 그렇게 살면서 간신히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지 않았을까.     


이런 작가가 있기에 우리는 아픈 일들과 ‘작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 보다. 감사하고 미안하다.  

    

제주를 찾을 때마다 바다와 산, 이국적 정서에만 감탄하지 말고, 불편하더라도 아픔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너도나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읽겠다고 서점이고 도서관이고 홈페이지가 불통이었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이 기회에 이 좋은 계절에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어버렸다. 한강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전 세계인들이 바로 알기를 바란다. 이런 소중한 작가를 가진 우리는 큰 부자다.      


너무 많은 이들이 한강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나는 빠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가 맨 부커상을 받았을 때 축전을 보내기를 거부한 대통령과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를 유해 도서로 정해서 폐기하라고 '권고'했다는 경기도 교육감에 관한 뉴스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도서 검열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숟가락을 하나 더 올려보기로 했다.     


이제 올봄에 동네 작은 서점에서 산 『한강 디 에센셜』을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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