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도서관』
2025년 11월 21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시청역 근처 알라딘 빌딩에서 열린 ‘경기히든작가’ 선정작 기념 책이야기마당에서 인자 작가(포도송이)를 만났다. ‘경기히든작가’는 경기도가 출간을 희망하는 도민들을 대상으로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이다. 경기도민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출간 기회를 제공하며, 글쓰기 교육, 마케팅 등 전반적인 출간 작업을 지원하여 지역 출판문화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이상 구글 AI). 경기히든작가 공모전은 숨어있는 원석을 발굴할 뿐 아니라 출판의 길도 열어주기 때문에 출판사와 숨어있던 작가들 모두가 탐내고 있다.
나는 지난해 2024년부터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은 바로 눈치채겠지만 해학과 골계미가 넘친다. 어린 시절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브런치북 “오린이의 동심 세계”를 통해 오십이 넘어 하나씩 해치워가는 모습은 읽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인자 작가는 브런치 마을에서는 따뜻하고 인자하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우리끼리만 알고 지내긴 너무 아쉽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녀가 경기‘히든’작가 공모전에서 당당하게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눈물 나게 기뻤다. 역시 낭중지추다. 보석은 숨어있어도 눈에 띄기 마련이다.
인자 작가의 신간 『삶은 도서관』을 주문하고 기다리다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경기‘히든’작가 선정작 기념 책이야기마당이 시청역 근처 알라딘 빌딩에서 열린다고 했다. 선착순 20명이라기에 고민할 틈도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고 또 갑자기 추위가 닥치자 집을 나설까 말까 한참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생각을 하니 ‘귀차니즘’은 저만치 떨쳐버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인데 평소처럼 터덜터덜 운동화를 신고 가려니 왠지 아쉬웠다. 겨우내 베란다에 ‘숨어있던’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꺼내 신었다. 지하철로 한 시간여를 달리고 다시 10분 걸어 행사장에 도착했다. 해가 짧아져 깜깜해진 거리를 또각거리며 걷자니 다리는 좀 아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입구에 정갈하게 간식과 책갈피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떡과 귤을 챙기고 인자 작가의 책을 알리는 책갈피를 하나 골라 들었다. 앞쪽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보이고 탁자와 의자가 줄지어 있었다. 자리를 잡으려는데 책 표지와 색을 맞춘 듯 분홍빛 코트를 입은 인자 작가가 반겨 주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작가의 사인을 받았다. 한 자 한 자 정성껏 눌러쓴 문구에 가슴이 뭉클했다.
뒷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봄 『영화로 만나는 우리들의 슈퍼스타』를 쓴 미친PD (이석재)작가의 북토크에서 만났던 김로운 작가다. 머리카락이 붉은 노을 아니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가을하다며 반갑게 인사하고 나란히 앉았다. 브런치 공간은 참 신기하다. 늘 얼굴도 보지 않고 글을 쓰면서 글로 친구가 되어 좋은 일이 있으면 이렇게 선뜻 축하하고 나서니 말이다. 한참 하하호호 요즘 지내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불이 꺼지면서 무대가 밝아졌다. 김로운 작가는 작년에 출간한 『중년 여성의 품위 있는 알바 생활』로 신문칼럼을 쓰고 다양한 북토크를 이어가면서 맹활약 중이다.
책이야기마당은 소설과 산문, 그림책 순서로 진행되었다. 인자 작가가 속한 산문 부분은 평론가 김성신 씨가 진행했다. 이번 기획에서 인자 작가의 멘토로 활동했다니 귀를 더 쫑긋 세우고 들었다. 신예 작가들이 긴장할까 봐 편하게 질문하고 답변을 유도하는 모습에서 프로의 모습이 느껴졌다. 덕분에 내내 웃음이 가득했다.
『모래알을 수집하는 시간』의 박선영 작가와 『전방 100미터에 캥거루족이 등장했습니다』의 나목 작가, 『삶은 도서관』의 인자 작가가 함께 작품과 자신의 글을 쓰던 이야기를 엮어 나갔다. 박선영 작가는 단어를 모티브로 일상을 섬세하게 연결했다는 평을 받았고, 나목 작가는 독립하지 못하는 자녀와 그 부모를 비웃는 개념으로 쓰는 캥거루족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시각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김성신 평론가는 유쾌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작가들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세 작가 모두 떨린다고 말했지만, 질문에 차분히 대답하며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했다. 인자 작가는 하나도 떨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냥 신예 작가가 아니라 준비된 작가였다. 그녀는 이미 고등학생 때 잠실체육관 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백일장에서 장원을 걸머쥐고 연단에 올라 자기 작품을 읽고 소감을 전했던 시대의 유망주였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시를 전공해서 스물네 살에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김성신 평론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수많은 시간을 조용히 지내다가 이제야 첫 책을 냈나요?”
인자 작가는 웃음을 머금고 답했다.
“그 중요한 순간에 시집을 낼지 시집을 갈지 고민하다 그만 후자를 먼저 선택하는 바람에 이렇게 돌아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눈에 살짝 아쉬움이 비쳤지만, 그녀의 말에서 그 30년이 아깝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그 시간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였다면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어느새 책이야기마당 시간이 끝나고 불이 켜졌다. 무대에 있던 인자 작가는 어느새 내려와 관객들과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다시 반갑게 손을 맞잡고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 했다, 좋은 책을 만들어주어서 이런 자리에 함께해주어서. 밝게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다음을 기약했다.
시집살이와 회사 생활 육아를 병행하면서, 언젠가는 꼭 다시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는 그녀가 정말로 “쓰지마 섬”에서 당당히 빠져나와 우리에게 도서관을 통해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도서관에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그득하다. 따끈따끈한 신간부터 온갖 풍파를 견디며 도서관 서가에서 묵묵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오래된 책들까지.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오는 젖먹이부터 지팡이를 짚고 도서관 마당 햇살을 즐기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인자 작가는 도서관 공무직으로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책과 사람들을 만난다. 그녀가 풀어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혼자 킥킥거리다 안타까워 눈물을 글썽이곤 한다. 그리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책장을 덮게 된다.
인자 작가의 말대로 나이 든다는 것은 젊음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품격을 갖추는 일이다. 나만 바라보던 순간들을 지나 주변을 돌아보고 다른 이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진심으로 슬퍼하고 기뻐할 힘이 생기는 시간이다. 갱년기를 훌쩍 지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 더없이 행복하다. 언젠가 그녀가 다시 올림픽 체조경기장 연단에 오르고 객석을 모두 메운 이들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모두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책과 삶의 이야기를 듣는 날이 오면 좋겠다. '쓰지마 섬'에서 오랜 투쟁 끝에 풀려난 그녀가 이제 훨훨 날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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