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글이 머리 했어

by 발자꾹


오늘은 오전엔 중국어랑 영어 공부하고, 『모비딕』도 좀 읽고, 면실로 수세미도 뜨고 바쁘게 보냈어. 점심 먹고는 바로 907번 버스를 타고 미용실로 달려갔지. 근데 오늘은 슬픈 소식이 있어. 7월 27일부터 그 버스가 안 다닌대. 적자가 너무 쌓여서 더 이상 운행할 수가 없대. 다혜쌤한테 머리하려면 그 차를 타고 가는 게 제일 편하고 좋은데. 이젠 버스랑 지하철을 연방 갈아타고 다녀야 해. 아쉽다.


오랜만에 머리를 뽀글뽀글 볶았어. 너무 아줌마 파마 같을까 봐 걱정했는데 역시 다혜쌤이야. 쌤이랑 엄마 머리 샴푸로 감아준 도우미에게도 수세미를 선물로 줬어. 다혜쌤도 샴푸 샘플을 주더라. 서로 주고받는 선물 속에 싹트는 정 크크크. 머리는 맘에 들어. 누나랑 아빠가 모두 귀엽게 뽀글거린다고 했어.


울 아들이 가장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데 그 말 들으려면 20일 동안 기다려야겠다. 머리가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아. 그치만 젤 좋은 건 네 전화를 받은 거지. ‘우리 아들은 왜 평일엔 전화를 안 할까?’ 하면서 기다렸으면서도, 여태껏 전화한 적이 없어서인지 받으면서 많이 놀랐어. 그리고 반가웠지.


월요일에 화생방훈련도 잘 마치고 오늘은 사격도 1차에 합격했다니 맘이 놓여. 날이 점점 더워지고 이제 장마철이잖아. 아빠가 말한 대로 진흙탕에서 이리저리 굴러야 할걸 생각하면 더 걱정이 되지만, 오늘 목소리 들으니 믿음이 간다. 그냥 믿어야지 하는 거 하고 또 다른 진짜 믿음. 다음 주엔 행군하겠네. 젤로 힘든 거 아닌가 몰라. 잘 먹고 잘 자고 해야 잘 이겨내겠지?


편지 쓰다 보니 10시 30분이 넘어 버렸네. 울 아들 쿨쿨 잠들었겠네. 아니 불침번을 서고 있을까? 누나는 이번 주 월 화 수 목 4일이나 아르바이트 가느라 바쁘네. 서로 얼굴만 보고 ‘안녕 잘 자.’ 할 때도 있었어.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이다가 일찍 자려고 하는데, 누나는 늦게까지 작업하고 늦게 일어나서 알바 다녀오고 하니까 그러네. 내일은 같이 아침을 먹을 수 있으려나?


누나랑 같이 먹기 힘들어서 요즘엔 베이글이란 커피가 엄마 아침 식사야. 베이글에 민트초코랑 초콜릿 스프레드를 잘 발라서 커피랑 먹으면, 난 아주 맛있는데, 다들 싫어하더라. 크크. 특히 아빠는 치약을 왜 먹냐고 핀잔을 주지만, 난 꿋꿋하게 내가 좋아하는 걸 먹을 거야.


수료식 날 먹고 싶은 걸 잘 생각해 봐. 일단 짜장면과 탕수육 잘하는 곳을 찾아볼게. 다음에 통화할 때 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줘.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까 말이야.


혹시 PX에 가봤니? 수료식 날 우리도 가볼 수 있나? 엄청 궁금해. 편의점처럼 생긴 건가? 필요한 물건들이 다 있긴 하니? 엄마가 쉴 새 없이 질문을 했다. 엄마 만날 때 하나하나 답해줘. 답장 없는 편지를 이렇게 오래 써 보긴 처음이다. 그치만 쓸 수 있는 것만도 행복해. 더군다나 네가 다 읽는다고 생각하니까 더 좋아. 수다쟁이 엄마의 잔소리가 쪼금은 그립지? 그치?


잘 자.

내 꿈 꾸지 말고 푹 자.


사랑해.


2019년 6월 27일 10시 48분

입소 17일째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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