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존스 Jun 27. 2021

꽃이불을 찾아서


“어디야~”

“집이지 어디긴 어디야~”


 아직 8시도 안되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전화해 뻔한 질문을 하는 엄마가 언짢아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그거, 꽃이불. 찾았다.”

“어! 정말 꽃이불 찾았어?”

 꽃이불을 찾았다는 소식에 나의 목소리는 별안간 밝아지고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엄마. 하얀색에 빨간색 꽃무늬 있는 이불 맞지?”

“그래~”

“엄마, 혹시 테두리에 레이스도 달려 있어?”

“그래. 레이스도 있어. 버린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와서 가져가.”


 꽃이불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진다.


 ‘희찬이 학교 가기 전에 같이 할머니 집에 들렀다 갈까?’

 ‘아니다. 이따가 학교 갔다 오면 희찬이를 깜짝 놀래 줘야지!"


 아이들은 얼른 학교에 보내버리고, 맨발에 슬리퍼. 잠옷 위에 플리스 하나 걸쳐 입고 내달리듯 친정으로 향한다.


“엄마, 엄마! 꽃이불 어디 있어? 응?”

“저기 있잖어..”


 응? 이럴 수가!!


 분명히 하얀색에 붉은색 꽃무늬, 테두리에 하얀색 레이스를 두른 [꽃 이불]이 맞기는 한데..

 희찬이의 꽃이불이 하얀색 순면 차렵에 붉은색 꽃이 드문드문 수 놓여 있고, 그 촉감 또한 극세사 이불 뺨칠 정도로 폭삭하고 부드러운 [꽃 이불]이라면, 엄마의 꽃이불은 온 천지가 붉은색 잔꽃으로 덮여 있고 짤막한 레이스로 테두리를 두른 조잡스럽기가 그지없는 뻣뻣하고 촌스러운 [꽃 이불]이었다.


 “아이고, 엄마 이거 아니야. "


 아쉬운 마음에 바닥에 놓인 꽃이불을 끌어당겨 차가워진 발을 덮어 본다.



 

 내가 애타게 찾는 꽃이불에 대해 설명하자면, 무려 9년 전, 남동생이 결혼할 때 일가친척들과 형제자매들에게 줄 선물로 엄마와 내가 남대문시장에 직접 가서 구입했던 솜을 넣어 누빈 순면 차렵이불이다.


 남동생이 결혼할 때, 나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신생아용 침구세트를 장만하는 대신, 보들보들하고 폭삭한 그 이불을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깔아주었고, 그것이 희찬이와 꽃이불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다. 꽃이불은 희찬이의 [애착 이불]이었다.

 

 내가 희찬이의 소중한 꽃이불을 버리게 된 사연은 이렇다.


 또래보다 발달이 느렸던 희찬이는 소변 가리기도 참 어려워했다. 남들은 몇 개월이면 가린다는데 나는 희찬이의 오줌 빨래를 거진 2년은 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조바심과 시기심이 내 신세를 스스로 볶은 것이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엄마 덕분에 꽃이불도 고생이 많았다. 이틀에 한 번은 세탁기에게 시달려야 했으니 아마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날은 지긋지긋한 빨래에 지쳐 ‘한 번만 더 오줌을 싸면 꽃이불을 버려버리겠다고!’ ‘너는 꽃이불이 불쌍하지도 않냐고!’라며 희찬이를 윽박지르기도 했다.

 ‘너도 나처럼 마음 아파봐라’라는 놀부 심보로 ‘버려버리겠다’라는 말을 던지긴 했지만, 내 속마음은 ‘어차피 오늘 밤에도 또 오줌 쌀 게 뻔한데... 버릴 순 없지.’였다.


 소아비뇨기과에서 진단하길 만 5세, 60개월이 지나서도 밤 소변을 가리지 못하면 [야뇨증]이라고 한다. 천만 다행히도 희찬이는 생후 59개월째에 자면서 오줌을 싸는 버릇을 고쳤다. 너덜너덜 해진 내 마음은 희찬이가 오줌을 안 싸는 바로 그 순간 회복되었지만, 불쌍한 꽃이불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헤져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희찬아. 우리 이제 꽃이불 버리자. 너무 낡았어. 이제 꽃이불 보내주자~

 희찬이가 오줌 안 싸는 기념으로 엄마가 새 꽃이불 사 줄게~ 응?”


희찬이를 어렵게 설득해 꽃이불을 버렸고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희찬이가 다시 꽃이불을 기억해 낸 건, 한 달 전쯤 읽었던  『십 년 가게』라는 책 때문이다.  『십 년 가게』라는 책을 읽던 희찬이가 슬픈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왜 내 꽃이불 버렸어?”십 년 가게가 진짜 있다면, 내 꽃 이불을 보관했으면 좋았을 텐데..”


며칠 전에는 또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엄마. 내 꽃이불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쓰레기 소각장에서 태웠겠지’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차마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희찬아, 꽃이불은 큰 배를 타고 아프리카로 갔어. 아프리카에는 이불이 없어서 추운 아이들이 많데. 어떤 가난한 소녀가 지금 꽃이불을 덮고 있을 거야~”


어젯밤. 희찬이랑 베갯잇 대화를 나누는데 희찬이가 꽃이불을 찾는다.


“엄마, 나 꽃이불 보고 싶어. 꽃이불 찾아 주면 안 돼?”

“엄마, 꽃이불은 어디서 샀어?”

“나 학교 가 있는 동안 엄마가 남대문 시장 가서 꽃이불 사다 주면 안 돼?”


 희찬이의 머릿속에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꽃이불은 어느새 커다란 그리움이 되어 희찬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아, 이를 어쩌나.


‘맞다. 그 이불은 예단으로 맞춘 이불이라 누군가가 그 꽃이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9년이나 지난 이불이라 똑같은 패턴과 디자인의 똑같은 이불을 구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그날, 그 이불을 나누어 가졌던 사람 중 누군가가 아직 그 이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눈처럼 하얬던 꽃이불은 너무 빨리 세월의 때가 묻었다. 보들보들 연약한 아기살 같던 꽃이불은 너무 쉽게 낡고 헤졌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꽃이불들은 결국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말았다.


 나의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은 둘째 치고, 희찬이의 마음이 짠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꽃이불을 찾았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으니, 맨발로 뛰어갈 만하지 않은가.


 결국, 희찬의 꽃이불은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꽃이불. 꽃이불.

5년 전 내가 무심코 버린 꽃이불.

눈처럼 하얗고 아기 피부처럼 보드라웠던 꽃이불


아프리카의 외딴 마을

사막의 추운 밤을 견뎌야 할

어느 소녀에게 포근한 친구가 되어

다정했던 희찬이를 꿈꾸고 있겠지.


내가 지어낸 상상에 내가 취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이 자라면 엄마도 자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