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샐리 Aug 19. 2021

스트레스 안 받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인간은 원래 불안할까?

  최근에 교정 유지 장치를 제거하기 위해 간 치과에서 이갈이가 심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금니의 상아질이 이미 노출되기 시작했다고,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라는 말과 함께. 이갈이를 한다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알았지만 상아질이 드러날 정도의 수준인지는 몰랐다. 그리고 스트레스도 마찬가지다.


    분명 최근에 원인 모를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달고 살긴 했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특히 걱정이 심해졌는데, 원래 이사와 같은 큰 변화는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하니 이해 못할 스트레스는 아니다. 하지만 이사가 끝난 지금이라면 그에 관련한 스트레스는 사라져야 옳을 텐데, 이사 다음날 밤, 나는 과연 이 이사가 옳은 선택이었는지, 그리고 내 삶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갑자기 몰려오는 큰 불안감에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웃긴 건 눈물이 흐르던 그 순간에도 왜 내가 갑자기 이러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에 쓴 글이 워낙 두서없어서 전문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짧게 가져오자면 이렇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왜 지금 울고 있는지.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물어보면 모르겠다.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은 방, 전 집보다 현저히 작은, 욕조도 없는 화장실, 전 룸메보다 깐깐한 현 룸메, 밥 먹고 싶을 때 못 먹는, 소금통 하나 내 맘대로 놓지 못하고 엄마한테 전화하고 싶은데 그러기 싫은 자존심.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직을 해야 하나? 이사를 해야 하나? 어제 방금 이사 왔는데? 혼자 살아야 하나? 그 월세를 내고? 혼자 살면 뭔가 달라질까?
그냥 눈물이 난다. 왜인지도 모르겠다 원인을 모르니 해결이 안 난다. 불안해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하자. 지금 나는 많이 불안해. 은퇴하면 이 불안에서 해소될 수 있을까? 이사 전에도 똑같은 생각하지 않았나? 그런데 불안이 왜 더 커지냐고.


    별게 아닌 이유들 조차 나를 서럽게 할 만큼 크게 느껴지던 건 왜였을까. 그게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서러운 일인가? 그 당시에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호르몬의 조종을 받는 생물이니 어쩌면 들쑥날쑥한 호르몬의 작용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20대는 원래 불안이 높은 시기라고 하니 나도 평범한 20대처럼 지금 나이에 맞는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나의 행복을 위한 고민이 나를 힘들게 하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악영향까지 끼친다면,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를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이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순진한 생각을 비웃듯이 이사 바로 다음날 이유도 모른 채로 침대에 누워 구질구질하게 소리도 못 내며 울지 않았는가. 나를 불안하게 했던 건 이사가 아니라 내일이었다. 내일은 또 처음이라. 하지만 당장 오늘 죽을 게 아닌 이상 내일의 내일도 있고, 그다음 날의 내일도 있을 거고, 그럼 난 평생 이렇게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나?


나는 이 불안감을 잠재울 방법을 안다. 해치워 버리면 된다. 그리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치운 경험치가 축적되면 언젠가 이런 쪼렙 이벤트 정도론 눈썹 하나 까딱 안 하는 만렙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쪼렙 시기가 즐겁다고는 절대 말 못 하지만, 멋진 어른이 될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견뎌낼 수 있다. 올해 벌써 두 번째 이사 (3)


    지금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다스릴 자신이 없기에 눈앞에 보이는 일만을 처리하려 했고 미래에 멋진 어른이 되길 소망하기만 했다. 마치 그 가상의 어른이 내 불안을 잠재워줄 것처럼. 그 사람도 결국 나인데.


    이번 일로 스트레스도 불안도 지금의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미래의 나조차도 해결해 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는 나 스스로에게 있기에, 요가를 하던, 명상을 하던, 뭐를 하던 나 안에서 스스로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그 방법을 알아서 "짜잔 이렇게 하면 불안과 스트레스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하는 글이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모른다. 얼른 알아야 하는데 라는 마음에 조급함마저 든다. 역효과다.


     하지만  이상 나를 구하러  미래의 나를 기다리는 것만큼은 그만두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단추는 내게 네가 보잘것없고 나약하더라도 괜찮다고 말을 거는 것부터 시작해야   같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나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그런 스스로를 인정하기는커녕 채찍질하고  미래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학구열 높은 학부모마냥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혼자서  해냈다며  부족하지 않다고, 부족하더라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 벌써 두번째 이사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