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의 큰 주제는 정해져 있기에 글감의 모든 방향이 그 주제를 향하게 하는 연습도 분명 의미는 있었다. 이렇게 매주 한 개씩의 글만 꾸준히 써내도 1년이면 48개(생각보다 많지 않네)의 글이 쌓인다. 매일 1개의 글을 올린다고 하면 그야말로 퇴고고 뭐고 없이 글 올리기만 바쁠 텐데 일주일에 1개는 그래도 고치고 생각하고 다시 쓸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은 주어진다. 그러면 실력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주제 외에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올라도 연재해야 할 글 때문에 미뤄두기 일쑤고, 미뤘다 나중에 쓰려면 감흥이 사라져 버린다. 아니면 그 글감을 어떻게든 연재북의 주제에 끼워 맞추는데 억지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주제에 끼워 맞추는 작업도 훈련이 될 것이다. 어떤 것도 버릴 것은 없지만, 주 1회 글 한편을 위해 희생되는 게 너무 많았다. 그림을 전혀 그릴 수 없고 책도 읽을 수가 없다. 글을 쓰지 않고 있어도 온통 연재글 생각뿐이다. 떠오르는 영감이나 감흥들을 자유롭게 쓸 수가 없다. 야생말이 다채로운 풀향기를 맡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풀을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안에 묶여 주는 풀만 섭취해야 하는 기분이랄까. 물론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연재에 올릴 글을 쓰면서 다른 글감도 자유롭게 써내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즐겁지가 않다. 안 절거워...
연재브런치북의 여러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어떤 가치를 우선하는지 선택해야 했다. 나 INFP, 자유로운 영혼이여 어쩌면 나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연재를 과감하게 중단하고 그동안 쓰고 싶었지만 주제에 맞지 않아 못쓰던 김장이야기를 썼다.
이 글은 daum과 브런치에 며칠 동안 걸려 현재 10만 조회수를 육박하고 있다. 김장 시기와 맞물린 것도 있지만 연재를 중단하자마자 쓴 글이 이렇게 되니 나의 선택을 응원해 주는 듯하다.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이기고자 하면 내 가랑이만 찢어진다. 잘하려고 하면 긴장하고 경직되어 아무 생각도 못하고 그나마 가진 장점도 전혀 발휘되질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쓰는 사람'이란 모든 상황과 사물을 쓰는 뇌로 보는 사람이다.
글 써서 돈을 버는 사람을 뜻함이 아니라, 돈이 되건 아니건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꾸준하려면 즐거워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도무지 지속할 수가 없다. ADHD인 나는 더 그런 것 같다. 언젠가는 연재를 하면서 즐겁게 쓸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전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지금 현재는 나의 즐거움을 선택해야겠다.
이래놓고 또 금방 연재를 시작하는 변덕을 부린다 해도, 이제 나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든다. 꼭 경험하고 겪어봐야 알게 되는 지랄 맞은 성격이 때로는 생동감 있고 더 리얼한 글을 쓰게 할 수도 있으니깐.
어설픈 성공보다 확실한 실패가 더 낫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중도하차한 실패 같은 나의 연재중단이 확실한 실패였으면 좋겠다. 확실히 실패하고 싶다. 실패에서 일어나고 헤쳐 나오는 법, 혹은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싶다.
이거슨 변명인가 분석인가 그 알듯 말듯한 외줄 타기의 경계에서 오늘도 나는 흔들거린다. 무엇이 됐던 글의 압박에서 오랜만에 벗어나 하루종일 푹 빠져 그림 하나를 완성했다. 완성의 성취감과 함께 그림 또한 만족스럽다. 그림은 조만간 개봉박두, 큰 기대는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