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서
[여전히 나는] 모니카 바렌고 그림
물속에 잠겨 있은지 두 달이다.
위를 보면 까마득하다.
어설프나마 생성되는 것 같던 '쓰는 근육'은 사라진 지 오래다.
팔을 휘저어야 할 텐데. 발을 굴러야 할 텐데.
조급함과 욕망이라는 힘을 빼야 할 텐데.
심보 사나운 고집불통처럼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끊임없이 침잠한다.
빨리, 잘 쓰고 싶었다.
빨리, 근사한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잠재력과 근면성실 어느 하나도 채우지 못했으면서
어렴풋이 보이는 수면 위 세계를 동경했다.
어서 취하고 싶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더딘데
그래도 이래저래
즐거워도 했다가 질투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하늘까지 닿아있다.
아래로 아래로
늘 그랬듯
침잠한다.
한 번도 저 벽을 넘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아마 못 넘을 것이다.
...
두어 달 가라앉고 있으려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참에 수면 아래나 훑어보자.
만날 저 위만 바라며 오르지 못해 안달 말고
그렇게 오래 머물면서도 보지 못했던
수면 아래나 둘러보자.
바닥에 뭐가 있는지 만져도 보고 누워도 보자.
에라 모르겠다,
이게 나라고.
물 색깔이 꼭
파랗기만 하냐.
수면 위로 꼭 올라가야만 하냐.
저 위가 너무 근사해 보이지만,
요 아래도 누려보자.
'오후의 소묘' 출판사에서 나온
[여전히 나는] 그림책 속 한 장면을 그려본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작가
모니카 바렌고의 시선을 따라간다.
여전히 나는,
나로부터의 상실을 느낀다.
한 발 나와 바라본다.
침잠을 바라본다.
이렇게 계속,
헤맬 예정이다.
두 가지 빛깔, 두 가지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