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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Oct 05. 2024

수면 아래서

[여전히 나는] 모니카 바렌고 그림


물속에 잠겨 있은지 두 달이다.

위를 보면 까마득하다.

어설프나마 생성되는 것 같던 '쓰는 근육'은 사라진 오래다.

팔을 휘저어야 할 텐데. 발을 굴러야 할 텐데.

조급함과 욕망이라는 힘을 빼야 할 텐데.

심보 사나운 고집불통처럼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끊임없이 침잠한다.


빨리, 잘 쓰고 싶었다.

빨리, 근사한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잠재력과 근면성실 어느 하나도 채우지 못했으면서

어렴풋이 보이는 수면 위 세계를 동경했다.

어서 취하고 싶었다.

걸음 걸음이 너무 더딘데

그래도 이래저래

즐거워도 했다가 질투도 하여기까지 왔는데,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하늘까지 닿아있다.


아래로 아래로

늘 그랬듯

침잠한다.

한 번도 저 벽을 넘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아마 못 넘을 것이다.

...


두어 달 가라앉고 있으려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참에 수면 아래나 훑어보자.

만날 저 위만 바라며 오르지 못해 안달 말고

그렇게 오래 머물면서도 보지 못했던

수면 아래나 둘러보자.

바닥에 뭐가 있는지 만져도 보고 누워도 보자.


에라 모르겠다,

이게 나라고.

물 색깔이

기만 하냐.

수면 위로 꼭 올라가야만 하냐.

저 위가 너무 근사해 보이지만,

요 아래도 누려보자.



'오후의 소묘' 출판사에서 나온

[여전히 나는] 림책  장면을 그려본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작가

모니카 바렌고의 시선을 따라간다.


여전히 나는,

나로부터의 상실을 느낀다.

한 발 나와 바라본다.

침잠을 바라본다.

이렇게 계속,

헤맬 예정이다.


두 가지 빛깔, 두 가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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