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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Sep 17. 2024

남편이 처외가를 좋아하는 이유

내가 불참을 언급한 이유

이종사촌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외사촌 남동생이 톡을 보내왔다.

"막내 삼촌이 소고기 사 준신대. 고기 사야 하니 인원 체크 할게."


올 4월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https://brunch.co.kr/@salsa77/260


형제간의 우애가 좋은 집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조카들까지 챙겨 단합하는 살뜰함을 보인다.

물론 개개인 사이의 갈등은 존재한다. 혈육이라 해도 다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갈등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순간 관계의 견곤함에 금이라도 생길까 보통은 묻어 두는 편이다. 좋은 말로 외가 식구들은 다 순하고 착한 편이다.

그리고 외삼촌이 이렇게 조카들을 불러 모으는 깊은 뜻을 다 알고 있다. 지금은 이렇게 모이지만 한 세대가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 이 유대도 늘어나는 엿가락의 가운데처럼 가늘어질 것이다.

외가 어른들은 그날이 오기 전까지라도 사촌들이 서로 얼굴 보고 말이라도 어색하지 않게 나눌 수 있도록 하려고 조카들을 불러 대접해 주시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자기 혼자라도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뜻을 받들어 단톡방에 참석 인원  1명(하서방)이라고 답글을 남겼다.


내가 가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숯불에 향을 입혀 구워진 소고기를 마다한 이유는

단순히 집에서 쉬고 싶어서였다.

시댁에서도 역시 명절 차례가 없어져 사 먹고 시켜 먹으며 이틀을 보냈다. 이렇게 몸이 편해지니 계속 더 편하고 싶은 나태한 심리가 발동했다.

방에 콕 박혀 휴식하고 싶었다.


태어나보니 나의 아빠는 8남매 중 둘째였고, 엄마는 6남매 중 맏이였다. 내 명절은 하루 온종일 일만 하는 여자들 속에서 눈치껏 빈둥거리는 역할을 맡는 것이었다.

시댁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살았던 엄마는 명절마다 (명절 아닐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허리 한번 못 펴고 대식구에 찾아오는 손님까지 대접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었다.


명절 기간 내내 엄마는 일개미처럼 일을 했다.

밥상이 차려지면 나를 부르셨고 식구들이 많다 보니 친척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밥을 후다닥 먹고 나오곤 했다. 내가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 줘야 기다리는 가족들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아빠의 8남매는 막내 삼촌까지 결혼을 했고 각 집에 조카들이 두 명 이상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조카들 즉 내 사촌들까지 평균 둘 이상의 자녀를 출산하였다.

다 모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명절에 모이는 인원이 군의 소대를 넘어 작은 중대급이었다. 


조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삼촌들도 조카들 이름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대여섯 명 이름이 불린 후에 마지막에 송주가 튀어나오 했다. 

물론 크면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집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기에 엄마의 고생과는 별개로 마냥 즐겁기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노동력을 보탠 것 아니고 즐겁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가족들이 모여 왁자지껄하다 먼저 눕는 곳이 내 잠자리가 되는 명절을 오랜 시간 보내다 보니 조용히 혼자 휴식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간절했다.


아껴 뒀다 먹는 사탕처럼 이럴 때 하나 꺼내서 녹여 먹고 싶은 고독과 같은 휴식을 난 원했다.(with 반려견 크림)


이것이 내가 외갓집에 가지 않겠다고 한 단순한 이유였다.


남편은 외갓집 모임에서 먹고 마시려고 며칠 술을 입에도 안 대고 체력을 비축하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은 내 외갓집 식구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외갓집 음식들 역시 좋아한다. 외숙모 음식 솜씨는 자다가도 생각나는 맛이기에 누구라도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반백살 남편은 그곳에서 만큼은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단지 술을 먹고 나름 귀염뽕짝 재롱을 피워 대니 내가 그 꼴이 보기 싫을 뿐..ㅎㅎ



모임 시간이 가까워 지자 남편의 마음속에 홑이불만 덥고 있던 버럭이가 깨어났다. 

나는 가끔 이 버럭이에게 시멘트 이불을 선물해 평생 못 일어나게 하고 싶다.

"같이 가면 될 것을 왜 고집을 피워."(버럭)

쉬고 싶다는 이유로 남편을 납득시키기 당연히 무리가 있다.  시댁서도 먹기만 했기에... 잠자리가 불편했다는 핑계도 설득력이 없었다.

너무 잘 잤음으로

단지 루틴이 깨지는 것에 대한 몸의 거부 반응 정도의 피곤함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그렇게 우리 네 식구도 소고기 파티에 합류하게 되었다.


중국여행 갈 이모네가 체력 안배 목적으로 빠지고 강원도 이모네가 멀어서 빠졌다.

엄마의 6남매 중 4남매가 왁자지껄 모였다.

엄마의 조카들도 다 모였고 그 조카들의 아이들도 다 모였다.



솜씨 좋은 큰 외숙모가 담근 오디 주가 대박 히트를 치며 자리는 무르익어 갔다.

유례없는 9월 더위에도 모두 즐거웠다.

시골 마당 경운기를 배경 삼아 아빠의 색소폰 연주가 이어졌다.

 안은 이미 어린 조카들로 운동장을 방불케 했다. 저러다 누구 하나 넘어질까 조마조마했다.

역시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백그라운드 경운기


엄마가 부른 '엄마 꽃'이라는 노래로 모두 눈시울이 빨개지며 대충 자리가 정리될 때쯤

나와 이종 사촌들은 모두 해산해 집으로 돌아왔다.


어른들은 우리의 차까지 배웅을 나와주셨고 아이들에게 용돈까지 주시며 마음을 써 주셨다. 내 아들들도 입이 귀에 걸려 돌아왔다.


남편은 큰 외숙모의 오디주를 한병 못 얻어 온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아마도 남편은 이미 다음 명절을 기다리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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