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고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젊음을 온전히 바치고
길고도 짧은 세월을 일과 함께했다
계절의 마지막
겨울을 향해 가던 어느 날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무얼 했는지도 모르겠고
무얼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것 같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앞으로 10년, 20년을 한들 달라질까
계속 갈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계속 갈 것이면 어떻게 갈 것이며
그만 둘 것이면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우리는 항상 잘해야 하는가
왜 항상 인정을 받아야 하고
왜 항상 경쟁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살면서 쓸데없는 일을 이렇게 많이 하는 것일까
기준을 세우고
평가를 하고
잘잘못을 따지고
결국 불필요한 것들에 많은 시간을 쏟고
남은 것이라고는 고작 허망하게 늙어가는 일
한 것은 많지만 내가 뭘 한 지도 모른 채
인생은 끝나가고
뛰고 뛰고 또 뛰었지만 남는 것은 없다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는 썩어 있다
썩어 버린 알맹이에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껍데기만 쫒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