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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Nov 08. 2022

나는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존재를 향한 질문


세상에는 쓰이는 것들과 버려지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에 화장실을 나오며 생각을 했다. 저 휴지는 손을 닦는데 쓰이기라도 하는데 나는 세상에서 어떤 쓰임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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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자는 메시지가 유행이다. 그래서 사람의 존재 가치도 어떤 성취를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 왔다. 특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목소리,


그것밖에 못해? 잘하는 게 뭐야? 이것도 못해?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혼나기 일쑤고 나는 나의 가치를 짓밟히며 살아왔다. 그런 외부의 목소리는 이미 나 자신에게 하는 '내부의 목소리'로 체화되었고,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는 잘하는 게 없어.’ ‘나는 왜 태어났을까.’ ‘왜 이것밖에 안될까.’라며 스스로 고통을 주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나는 세상에서 어떤 쓰임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제, ‘쓰임이 없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런 쓰임이 없다는 것에 ‘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즉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쓰임이 있는지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야만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화장실을 나오면서 내가 어떤 쓰임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인물과 일과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사람들 관계 속에서 맺고 있는 역할들, 나의 직책이나 하고 있는 일,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활동들. 그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문제는 나의 쓰임이 아니라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느냐였다. 내가 살아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 나는 왜 내가 필요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은 분명하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그것에 이르지 못한 지금의 볼품없는 나의 모습. 이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되지 못하면 저 휴지조각처럼 손을 닦고 버려지는 것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 '손을 닦는 데라도 쓰인다'는 생각보다는 '손을 닦는 데 쓰였지만 이제는 아무런 쓰임이 없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나의 존재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고 나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쓰레기통에 버려졌더라도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도 정답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화두는 던져 볼 수 있겠다.


그 쓰레기통이 인생의 끝은 아니다.



그렇다. 내 삶이 아무리 시궁창 같더라도, 그래서 '나는 뭐지?' '나는 왜 살고 있는 거지?' '나는 도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어도,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죽기 전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그 인생이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살아 있을 때 고통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도 감옥에서 죽고 나서야 그 아름다운 시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한 개인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졌던 꽃이 다시 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생명이기도 하고, 한 시대를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동료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가치를 인정받을지 모르고, 언제 어떻게 우리의 가치를 깨닫게 될지 모른다. '나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나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지 모르고, 평생 쓰레기통에서 살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시 브라운 빛깔의 멋진 재생 종이로 태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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