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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Mar 26. 2024

직업은 OO다.

         

학생들을 위해서 직업 전문성과 관련된 강의를 부탁 받아 강의 자료를 만들었다. 30분의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임팩트 있게 해 줄까 고민을 하다가 내가 20살부터 걸어온 자취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낫겠다고 생각하고 20살, 21살, … 그리고 현재까지 나의 사진을 위주로 PPT를 만들었다.    

  

20대의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내가 30세, 40세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혼자 노트에 나의 진로에 대해서 상상해서 적어 보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나의 배우자는 누가 되어 있을지 이런 것도 궁금했다..)


PPT에 학교 다닐 때의 사진, 졸업해서 취직을 했을 때의 사진 등을 붙이며 만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현재의 나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20살에는 상상을 하지 못했던 삶인 것 같기도 하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을지 예측을 할 수 없고, 같은 직종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지위나 위치에서, 어떤 생활환경에서 살아갈지 20살에는 상상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PPT 몇 장을 넘기지 않았는데 이미 나의 나이는 훌쩍 많아졌고, 이제는 늙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20대의 파릇파릇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사진 속의 나의 모습은 외모도 많이 달라져 있었고, 숫자만큼이나 열정도,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있었다. 당시에는 시간이 잘 안 갔고, 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것들은 다 잊게 되고 좋았던 추억들만 몇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인생은 OO다. 한 단어로 하면?


PPT의 마지막은 인생의 시간에 대해서 꾸몄고, ‘인생은 OO다’ ‘직업은 OO다’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인생은 바로 단어가 떠올랐는데 직업에서 막혔다. 직업을 한 단어로 정리하기가 생각보다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직업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뭐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의 대답은?



내가 생각하는 직업의 특징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나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먹고 살 수단이다.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도 있다.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도 많다.

억지로 할 때도 있지만 보람이 있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 좋지만, 좋아하는 일이 신물 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경쟁이 항상 도사리고 있고, 처음에는 돈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돈을 추구하게 되기도 한다.

하나의 직업을 오래 갖다 보면 그것이 나의 일상이자 가치관, 행동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사회에서 어떤 쓰임이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기도 하다.     

규칙적인 루틴으로 건강하게 해 주기도 한다.

인생을 살려면 뭐라도 할 건 있어야 한다.



이런 특성들을 계속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그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주가 지나는 시점, 내 머릿속에 드디어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생존.    

      


Image by 12019 from Pixabay


예전에는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일단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사냥을 하고, 과일을 따는 것이 직업이었고, 집을 만들고 옷을 짓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곧 직업이었다. 농경 사회로 넘어오면서 농사가 직업이 되기도 하고, 도구를 만드는 것이 직업이 되기도 하고, 처음에는 물물교환을 하다가 화폐가 생기면서 돈을 버는 것이 직업의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벌면 농사를 짓지 않아도 되고,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옷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점점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직업의 종류도 많아졌고, 직업은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과 결부가 되기도 하고, 잘하는 일이나 능력을 따라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거나 결혼을 할 때 좋은 위치를 가지는 것과 관련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직업을 한 단어로 요약하고 요약할수록 ‘생존’과 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도 계속하다 보면 하기 싫은 일이 되기도 하고(그래도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직장을 옮긴다고 하더라도 결국 생존 때문에 다른 직장에 취직은 해야 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거나 좋은 배우자를 구하기 위한 것도 결국 나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가 번아웃이 와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도,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도, 나의 능력을 갈고닦는 것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런 생존 경쟁이 싫어서 도망가고 싶어도 당장 배가 고프면 밥을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되고, 날씨가 추워지면 두꺼운 옷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된다. 물려받았거나 벌어 놓은 돈이 많아서 평생 벌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다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 더 좋은 차나 명품 백을 사기 위해 돈을 더 버는 것도, 남들보다 더 높은 명예나 인기를 얻는 것도 ‘보다 나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전문성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보다 나은 생존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는 다른 생존 능력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내 몸값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 바로 직업의 전문성이라는 얘기다.     


(직업이 있다고 해서,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일자리를 구했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내가 출근을 안 하면 소용이 없고, 내가 아침에 못 일어나면 최고급 직업이 있다고 해도 말짱 도루묵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 준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더 열심히 해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을 할까? 아니면 안정된 직장만 구하면 되기 때문에 졸업을 무사히 잘 하자고 생각할까? 아니면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 되는 인간 존재의 숙명에 대해서 허탈함을 느낄까?     


아마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겠지.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그간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잘 전달하는 것이고, 받아들이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겠지.      


직업 전문성과 관련된 나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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