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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lvia Mar 22. 2021

1.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언제나 내가 먼저다

"이 세상 여자가 다 너 같다면 앞으로 난 그 누구를 사귀고 싶지도 않고 다시 결혼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을 거야!"


코스타 리카로 떠난 비행기 안에서 옛 남자 친구의 가시 돋친 말이 윙윙 거렸다. 떨치고 싶어도 끈질긴 벌처럼 이 말은 내 귓전을 맴돌았다. 헤어진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이 말은 쉬이 잊혀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그렇게 못난 여자인가. 전 남자 친구가 치가 떨려할 만큼? 저런 말을 해놓고 그 자식은 잘 먹고 잘만 사는데 난 도대체 얼마나 못났으면 아직도 새로운 사랑을 찾지 못한 걸까. 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한숨을 내 쉬었다. 나 자신을 수 없이도 괴롭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비행기 창문 밖 너머로 본 하늘처럼 내 마음도 핑크빛으로 물 들었으면 좋으련만, 그곳은 먹물이 붓질을 해 놓은 블랙홀이었다.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았다. 사회가 정해놓은 ‘결혼 적령기’ 나이어서 더 그랬다. 그즈음 내 주위 친구들은 우후죽순 결혼을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몇몇은 애 엄마 아빠가 되어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나도 그들처럼 결혼을 했어야 했다. 우리는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마음은 변했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어느순간 보니 나는 파혼녀가 되어 있었다.


어여쁜 청첩장을 받거나 인스타에 올라온 고사리 같은 아기 손을 볼 때마다 온갖 감정에 휩싸였다.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쿨하게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주었지만 사실 난 쿨하지 않았다. 온 맘 다해 진심으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행복해 보이는 일상에 질투가 났고, 이내 이런 쪼잔한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들의 삶에 비해 나는 초라했고 무엇을 해도 변함없는 내 상황이 더 암울할 뿐이었다. 핑크빛 기류는커녕 사막 같은 땅이 더 이상 갈라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답답했다.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마음에 난 푸른 멍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을 혼자 추스르는 것도 힘든데 가족과 학교일은 나를 더욱더 낭떠러지로 몰아냈다. 내 삶 곳곳에는 이내 자격미달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연애 자격미달. 선생님 자격미달. 딸과 누나로써 자격미달. 삶이 나에게 던져주는 숙제는 너무 벅찼고 그런 벅찬 것을 혼자 감당하려니 자존감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 혼자 서서 파도를 맞는 기분이었다. 가린다고 가렸지만 점점 사막으로 변해가는 내 마음이 얼굴에도 나타났는지 그때 나를 봤던 절친은 걱정해주며 진심 어린 말로 "Take care of yourself"라고 말해 주었다. 손끝만 건드려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상담받던 곳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동생에 대한 얘기일 거라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상담실에 들어간 나에게 뜻밖의 말을 해주셨다. 


“우울증이 심각해진 것 같아요.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약 처방해야 합니다.” 


“...”


정신이 멍해졌다. 우울증? 동생이 아니라 내가? 믿기지 않았다. 


친구가 날 걱정했던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진심 어린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지만 전문가가 말해주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내가 우울증 상태에 있다니.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정말로 나를 돌봐야 할 시간이라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라고 하셨다. 그 이후 나 혼자 따로 상담을 몇 번 받았고 그제야 내가 결코 괜찮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내 어깨 위로 놓인 삶의 책임 때문에 나를 돌보는 것은 항상 뒷전이었다.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동생을 두고 나를 우선수위에 놓는다는 것은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이기적인 것이 나쁘다는 생각에 내가 원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나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랬으니 연애는 꿈도 꿀 수 없는 저 먼나라 이야기었다. 그렇게 발버둥 치며 바르게 살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가 결국 이거 였다니. 화가 나고 허무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나까지 무너질 수 없으니까. 나를 돌보는 것이야 말로 내가 이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이었기에 그제야 비로소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 여행 가는 것은 사치라고 느껴져 미루고만 있었던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서는 불이 나고 있는데 여행은 무슨 여행. 그렇게 마음의 소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는데 우울증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미룰 수 없었다. 나를 앉혀놓고 물었다. 너가 지금 원하는 게 뭐니? 쉽게 답을 할 수 없었지만 일단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봤다.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나를 끊임없이 밑으로 당기는 이 우울함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고. 


희미한 기억 속에 과테말라에서의 2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테말라로 떠났었기에 전 남자 친구와 헤어졌던 것인데 그곳이 생각나다니. 아이러니했지만 사실이었다. 선생님 커리어를 과테말라에서 시작하며 사회인으로 독립해서 처음으로 자유다운 자유로움을 느낀 곳이었다. 해방감. 독립이 주는 자유로움. 미지의 세계에서 매일이 설레었던 나나들. 그 경험이 그리웠다. 따뜻한 중남미의 태양을 느끼며 다시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솔로 여행지를 중남미로 정했고 그중에 그나마 안전하다는 코스타 리카로 떠나기로 했다. 늪과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갈 생각과 다시 스페인어를 배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래 떠나자.
떠나서 조금만 나에게,
나한테만 집중하다가 오자.
충분히 그 정도 욕심은 부려도 돼.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나만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부모님은 고생하시는데 혼자 여행을 간다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여행한다고 해서 내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닐 텐데 괜한 돈만 날리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들었다. 게다가 여자 혼자 여행하는 건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래성 같은 마음이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친구에게 물었다. 언제나 내 편인 그녀는 격려의 말투로 나를 다독였다. 넌 그 정도 돈을 쓸 만한 충분한 가치 있는 사람이니까 여행을 떠나도 괜찮다고.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을 붙잡고 코스타 리카로 떠났다. 내 마음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제 멋대로 뒤섞이고 있었지만 한번 여행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뭐라도 얻는 게 있겠지. 또 얻는 게 없으면 어떤가. 지친 일상에서의 잠깐의 쉼이라도 가질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다시 한번 비행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붉은 노을이 졌던 하늘엔 어느덧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그곳에는 몇몇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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