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의 힘
우리네 인생은 어딘가 외롭고 고독한 전쟁의 연속인 듯하다. 전쟁 중 작은 국지전 하나하나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인생의 굴곡을 느끼며 희망과 기쁨에 도취되기도 하고 절망과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인생의 삶이라는 전쟁 속에서 최근 가장 크게 패배한 절망의 상황.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그래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 스스로도 위로와 용기를 받고, 나아가 나와 비슷한 상황의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여 이 글을 적는다.
사건의 시작은 늘 돈에 쫓겨 살아도 부족하지는 않은 지극히 평범한 하루에서 시작되었다.
아내와 나는 여러 가지로 잠버릇이 맞지 않았다.
특히 나는 코골이가 심해서 아내가 편히 잠잘 수 없을 정도라 매번 아내가 혼자 밖으로 나가 거실에서 잔다거나 반대로 내가 밖에 나가 거실에서 자거나 하면서 지내왔었다.
모든 게 좋은 아내였지만 가끔은 이런 부분들에 서운함이 느껴지기도 한 내 욕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문제의 그날이 시작되어 버렸다.
밤새 교대근무로 피곤한 상태의 어느 날 아침 인터넷 서핑 중 무언가 귀신에 씐 듯 홀린 듯 우연한 베너를 통해 들어간 사이트에서 투표를 하면 수수료와 원금을 같이 돌려준다는 말에 용돈벌이 삼아 생각하게 된 시작.
처음엔 누구나 부담 없을 만큼의 작은 소액으로 시작하여 환급을 해주던 담당자. 돈을 돌려받고 나니 정말 의심이란 사라지고 불경기에 용돈벌이나 해야겠다고만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나는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고 만 것이었다.
처음엔 원금과 수수료를 환급하더니, 좀 더 지나니 수수료만 환급을 하고 더 많은 금액을 넣고 마지막까지 가야 돌려준다는 말에 거기서 멈췄어야 했거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일까? 세상엔 공짜란 없는 것을 망각하고는 폭주기관차 마냥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중간 정산을 해준다는 상황에 실수를 유발하고, 실수한 사람끼리 모아 다시금 복구할 금액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리딩방과 같은 사기행각. 평소엔 잘난 듯 여러 방면으로 많이 아는 듯하던 내가 그날따라 편협한 시각과 돈만 바라보며 갈구하는 도박 중독자와 같은 모습으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버리게 되었다.
스스로 감당 가능한 범위를 넘어 더 이상의 대출도 불가능한 상황이 오고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광인이 되어 돈을 빌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그때라도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하고 나왔어야 했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았고 금융회사들에서 피싱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직접 전화를 받고 나서야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서서히 사그라드는 장작처럼 꺼져갔다. 모든 희망의 불이 꺼지고 절망의 그림자가 나를 덮치며,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던 감정적 판단이 죽고 이성적 판단만이 남았을 때 내 모든 평생의 시간이 부정당하고 남은 것 하나 없이 모두 빼앗길 상황에 놓여버렸다.
이제 인생 최대 최악의 상황의 절망 속에서 어찌해야 하나 생각할 때,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그 무게감이 무섭게 짓누르기 시작하며 가족들의 얼굴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하자 공허한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졌다.
이런 사실들을 말하기엔 가장 무섭고, 두렵고, 미안하고, 수치스러운 나만을 바라보고 버텨오던 아내에게, 이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앞선 이야기를 들으며 황당, 분노, 수치와 짜증의 모든 것을 받은 아내가 해준 이야기. 왜 그랬냐고, 본인과 왜 상의하지 않았냐고. 원망과 슬픔이 가득한 말을 들으며 나는 대역죄인이 되어 그저 고개를 떨구고 사형수의 마음으로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래도 마지막으로 희망을 주는 아내의 한마디, '그래, 일이 벌어진 건 어찌하겠니, 지금이라도 갚고 수습해 가야지' 그 한마디가 사기의 충격과 대출의 공포 속에서 몇 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며 절망의 골자기안에 있던 나에게 한줄기 따스한 빛이 되어 내려왔다.
절망의 상황에 한줄기 빛으로 내려온 아내가 돈도 없고 힘든 가운데 아끼고 모아 오던 본인의 모든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으면서 사건을 수습해 가기 시작했다.
매번 내가 의지가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족이 뒤돌아보니 나의 버팀목뿐 아니라 그늘막이 되어주고 삶의 여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등불이 되어주고 절망에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줄이 되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난 후부터는 아내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본인의 삶을 희생해서 갚아가고 길을 찾아주고 있었고, 나도 경찰 신고 사건접수와 변호사 선임을 통한 원금회수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를 위해서 사건을 정리하고 대화내역을 준비하고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ECRM)'에 접수하고 경찰서에 출석하니, 사건담당자 배정과 함께 "가상계좌이고 일부는 외국인계좌도 있어서 원금회수가 힘들겠네요. 일단 처리하겠습니다."라고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답변을 받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이후에는 인터넷에 그리 당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사기 구제 관련 검색하여 하나의 변호사 사무실을 연락했다. 변호사사무실에서는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서 원금회수는 어렵다면서 소송을 통해서 상대방 계좌 동결과 채권추심등을 이어가야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다고 하며 설명을 해주었고, 이제는 이성적 판단으로 법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만이 나에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착수금과 함께 소송자료를 준비하여 제출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법 절차를 기다리는 게 되었지만, 그리고 이미 받은 대출에 대해 갚아나가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야 할 시간이 왔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단시일 내 끝나지는 않을 것이고, 6개월 또는 더 많은 시일이 필요로 할 수 있다. 이번일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고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겨내고 버텨내 볼 용기를 얻었으니 헤쳐나가야지.
지금껏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생각했었다. 가난했지만 어떻게든 챙겨주신 부모님, 사회생활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을 부모님의 경제상황 때문에 다 털어서 빈털터리가 되었던 기억, 업무 중 산재 사고를 당해 수년간 병원생활하신 아버지, 자영업과 병시중을 병행하시다 위암 4기 판정받고 항암치료하던 어머니, 둘째 아들 결혼한다고 평생의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아픈 와중에도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나의 작지만 당찬 예쁜 아내, 결혼 후 1년도 안 돼 위암으로 결국 돌아가신 어머니, 나보다 먼저 보이스피싱 당할뻔한 아버지, 없는 돈 있는 돈 긁어모아 어떻게든 구해나간 첫 신혼집, 몇 년의 기다림 끝에 태어난 예쁜 딸, 아내와 딸과 함께하는 좋은 추억과 시간들, 그런 가정을 풍비박산 내버린 이번 일.
인생의 여정 속에서 언제나 행복과 즐거움만 있을 수 없고, 희로애락이 있는 것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계속된 시련과 어려움의 연속이 우리의 인생길이라 생각한다.
세상이 첨단기술개발, 해킹, 자국우선주의에 따른 관세전쟁, 영토전쟁, 종교전쟁, 정치적 분쟁 등 혼돈 속으로 빠져들며 세계의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고, 개인, 기업 구분 없이 모두가 힘들어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비단 경제문제만이 아니다 세계경제외기가 도래할 시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환경문제가 심각해져서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제반 모든 환경이 우리 인간에게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장밋빛 미래가 아닌 어렵고 힘들고 척박한 절망의 구렁텅이만 보여주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가족이라 생각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다들 보셨을 거라 생각한다. '진정한 사랑만이 구할 수 있다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처음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전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공주는 왕자와 공주와의 사랑이 대부분이지만 이렇게 가족을 강조하고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었다.
우리는 가족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모두가 인생은 처음이니까. 하지만, 진정한 가족의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글을 보는 또 다른 누군가는 상황이 더 극한으로 빠져서 나빠진 상황일 때 보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이 상황을 버텨낼 것이고, 끝내 이겨낼 것이다.
우리 모두 힘든 세상 서로 위로와 용기로 함께 나가가 더 넓고 밝은 사회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