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불안해서 읽는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랬다.
어렸을 때는 재밌거나 궁금해서 읽었던 것 같다. 서점을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면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하던 시절 정류장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서점에 들러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릴 겸 책을 읽었다. 이사를 하고 우리 집 근처에 서점이 있을 때엔 학교 끝나고 서점에 들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곤 했다. 그 시공간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나를 돌봐주었고, 나는 그 시공간을 즐거워했다.
그 때에 제법 많은 책을 읽어서였을까. 고등학생 시절 언어 영역은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골라준 흥미로운 책 읽기 같았다. 시험에서 그리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 시절 언어 영역 점수는 내 성적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대학에 가서는 나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어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시간을 낼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오는 아이였다. 우리는 만날 약속을 잡을 때면 장소를 목적지 근처의 서점으로 정했고, 미리 도착한 사람은 거기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공강 시간이 붕 뜰 때면 카페에 가기도 하고 쇼핑을 다니기도 했지만 꽤 자주 서점에 가서 각자의 책을 읽었다.
난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세세한 것들은 쉽게 휘발된다. 대학 시절 그 친구와 함께였던 시절을 지나서 신앙서적을 탐독했던 때가 있었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결혼은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육아서를 탐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중간 지점에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혹은 읽지 않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두 종류의 독서 취향이 기억이 나는 까닭은 그 시절 누군가가 내게 카톡 프로필을 보고 '신앙서적을 많이 읽으시나봐요'라고 이야기를 건넸기 때문이고, 그 당시 읽은 무수히 많은 육아서의 내용이 대부분 아이의 문제는 엄마의 책임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죄책감을 떠안기가 싫어서 아직 결혼하지도 않은 내 친구들 단톡방에 '육아서 절독 선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기억나지도 않는 그 시절에는 한 분야에 몰두하지도, 많은 양의 책을 읽지도 않은 채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건너뛰어 내가 기억하는 독서 경험은 그 당시 복직했던 학교에서 다시 시작한다. 수요일은 '배움과 성장의 날'이었다. 문서로만 있는 그런 날이 아니라 실제로 배움과 성장을 위한 일을 계획하고 빠짐없이 실행했다. 그 날 중 일부는 독서 토론의 날이었다. 함께 읽을 책을 미리 추천받고 그 목록 중 한 두 권을 투표로 선정하여 일정 기간 동안 읽은 후에 함께 토론을 했다. 나 혼자서라면 굳이 꺼내들지 않았을 꽤 무게 있는 책들을 다뤘다. 안 그래도 바쁜 학교가 덕분에 더 바빴다. 이렇게 지내면 2~3년 후에 나는 성장해있을 것 같은데, 그 해의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좋았다.
나는 첫째와 둘째를 낳아 키우는 동안 쭈욱 육아휴직을 했었기 때문에 공백이 많았다. 복직을 했을 때 교사로서의 내 자존감은 꽤 쪼그라져 있었다. 휴직한 사이 나이스 시스템도 바뀌어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지만, 나는 질문 하나를 하기 위해 30분을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즉시 해결되지 않은 작은 일들은 쌓이고 쌓여 매일이 쉽지 않았다. 복잡하고 고단했다. 이제 막 돌을 넘긴 둘째와 아직은 어린 첫째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던 내겐 지금 돌아보아도 하나하나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통과하던 그 때는 더 그랬다.
그 고단한 일상에 고단함 한 스푼이 더해졌는데도 왜인지 좋았다. 아니, 싫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좋은 게 더 많았다. 어떤 책은 내가 모르던 역사의 한 장면을 알려 주었고, 어떤 책은 내가 모르고 지내던 교육의 책임을 일깨워주었다. 아이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지금의 교육의 현장은 어떤 면이 아쉬운지,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책을 통해 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토론을 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웠다. 그 마음은 나의 교실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알고 있는 변화들을 이루어갔다. 이제 교실 안에는 아이들만 남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삶도 따라왔다.
나는 수업을 잘하는 교사이고 싶었다. 대학 시절부터 아카데미를 찾아다니며 다양한 수업 방법과 주의집중 방법, 교실놀이 등을 익혔다. 그래서 교실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좌중을 휘어잡는 권력가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나는 교직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매 순간 진심으로 그랬다. 그런 나를 보고 어느 노선생님께서는 천사 선생님이라고도 하셨다. 그러나 남들은 모르는 내 시선의 중심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내가' 아이들에게 친절한가, '내가' 오늘 수업을 잘 계획하고 실행했는가, '내가' 다툼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는가.
그 즈음 존경하는 어느 선생님께서 교내 연수를 해주셨는데 그 때 말씀해주신 한 문장이 그 시절 내 마음에 와닿았다. 예전에는 내가 빛나는 수업을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빛나는 수업을 하고자 노력하신다고. 진심으로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자 그 다음부터는 내가 찾아 읽었다. 교육, 아동, 심리, 상담, 뇌과학 관련 책들을 찾아 읽으며 책 속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때때로 다큐멘터리도 찾아 보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 나름의 생각들이 정리되고 중요도가 정렬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게 된 '지식이 깃든 사랑'이라는 말도 이 시기 어느 책에서 읽었다. (책을 읽고 따로 기록을 해놓는 스타일은 아니다보니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를 모르겠다.)
지식이 깃든 사랑.
마음만 가지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주는 쪽에서 보면 그렇게 숭고할 수 없지만 사랑을 받는 쪽에서 보면 그 뜨거움이 늘 사랑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랑 받는 존재를 더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를 위한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참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그 말이 나는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여 관련 책들을 나름 탐독했더니 전과 같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내 시선의 중심이 바뀌었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않았던 것을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상황 탓에 꼬여버린 마음들도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존재 자체를 조금은 넓어진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책이 가져다 준 고마운 점이 참 많기에 그 안에서 또 무언가를 얻기를 기대하며 책을 읽으면 좋았으련만, 돌아보면 내 안에는 접근 기제가 아닌 회피 기제가 작동했던 것 같다. 내가 잘 알지 못해서 온전하게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반성은 나의 불안과 만나 엉뚱한 생각을 싹틔웠다. 잘 알지 못했던 그 때처럼 지금 시점의 나 역시 또 다른 어떤 부분에서 모르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 그러면 나는 또
불안해서 읽는다.
모르고 있을까봐. 나의 무지 때문에 온전하지 못한 사랑을 하고 온전하지 못한 사랑을 주고 있을까봐. 애초부터 인간이 완전무결한 사랑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영역에 서있을 때의 나는 꼭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 같다.
불안과 완벽주의, 이토록 환상적인 콤비가 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