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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May 14. 2021

一單詩 한 글자 : 붓 (筆)

나는 여러 영역에 걸쳐 조금 엉성하게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글씨를 바르게 쓰지도 못하며, 켈리그라피도 배운 적 없으면서, 붓펜으로 필사하고 그걸 또 여기저기 올려둔다.

좀 배우신 분들이 보기엔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좀 까칠해서 내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하시는 분은 못 본 듯하다.) 시시한 글을 끄적이고 시라면서 우기고, 시집을 낸다고 깝죽거리는 것도 그럴 것이다. 문학 공부를 깊게 하신 분들이 보기엔 학생들의 습작 보다 못한 글이리라.

그런데 엉성하거나 좀 모자라면 어떤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모를 때도 있고, 그냥 다른 이들이 정도라고 알려주는 길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그걸로 밥 먹고 살려는 것도 아니고 타인을 지도하려는 것도 아닌데, 그냥 좀 자기 방식으로 즐겨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살다가도 문득문득 힘겹고 외로울 때도 있으니, 가끔 벌레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도 좋고. 아래 시는 그냥 옮겨 적기가 힘겨워서 첫 글자부터 펜이 많이 흔들리더라. 그래서 그냥 끝까지 흔들리는 대로 삐뚤하게 써봤다. 옮겨 적다 거의 끝 문장에 가서 제목을 읽게 되었다. 필사하기 어렵게 느껴진 것이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시어도어 레트키 <잃어버린 아들> 삼봄씨 필사본






급하고 지랄 맞은 성격이라 볼펜을 들고

내가 끄적인 글들은 나조차 읽을 수 없었다

늘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부끄러웠다

그럴수록 칼을 갈듯 세상의 그릇됨을 비난하며

날카로운 글을 끄적이다가

사랑하고픈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너무 빠르게 달리다 지쳐 쓰러진 어느 날

펜을 내려놓고 붓을 잡았다

붓은 빠르게 쓰이길 거부했다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부드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글에 내 못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기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편리하고 반듯하기만 한 볼펜을 내려두고

힘을 빼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휘어지는 붓을 손에 쥐고서

흔들리며 사는 법을 조금은 즐기고 있다



2021. 5. 14

붓펜으로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삼봄씨 이야기


삼봄詩정원 팟빵 방송으로 듣기 : http://www.podbbang.com/ch/1778522?e=2404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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