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봄 Sep 11. 2021

나태주 시인의 <다시 9월이>

기다리라 더욱 / 오래 오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미숙하고 부족한 나를 마주할 때


  그동안 내 삶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었다가, 또 어느순간 문득 멀어졌다. 어떤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다시 다가오곤 했다. 연결된 것이 고마워 나누고 싶은 것이 있고,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을 약속으로 표현했지만 지키지 못한 바가 많았다. 그것이 부끄러워 다시 도망치듯 멀어지거나, 다가오는 이에게 선을 긋고 벽을 쌓았다. 이 얼마나 옹졸하고 미숙한 인간인가.


  이제 가진게 별로 없어 무엇을 나눠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아지고 있다. 내 안에 있는 작은 조각을 나눠주어도 상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인지 의심이 들 때도 많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받아왔는데, 잘 지키고 키워내지 못하고 낭비해버린 것이 많다. 나는 지키는 자의 역할엔 늘 미숙했고, 빼앗는 자의 역할은 혐오했으며, 별것도 없으면서 나누는 자의 역할 놀이만 하려는 아집 같은 것에 사로잡히곤 했다.


  관계속에서 내게 더 이상 줄 수 있는게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여전히 가난함에 머무르는 법이 서툰, 내 안의 이 어린아이의 치기를 지켜본다.



리더들이 자신의 일상 속 스트레스를 잘 돌보지 못하거나, 소진된 상태에 오래 머물러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시야가 좁아지고, 자기방어적으로 습관화된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이나 조직에 건강한 영향을 선물하긴 어렵다는 소리다.


  리더들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피고, 조금 더 여유를 갖었으면 한다고 종종 잔소리를 하는데…. 요즘엔 그 잔소리를 하는 내 상태가 온전하지 못할 때가 잦다는 걸 인식한다. 자신이 긴장되어 있음을, 스트레스 상황에 오래 노출되어 긴장되어 있음을, 그저 알아차리고 외면치 않고 그저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좋은 동료들과 만남은 이 불균형의 상태에서 벗어나 내적 상태를 건강하게 만드는 조율의 기회를 제공한다.


  주절주절 말이 많아졌는데, 주말엔 몸에도 마음에도 쉼을 허락할 수 있길 기원해본다.


2021. 9. 11

마음에 여유 없음을 바라보고 있는

삼봄詩이야기



기다리라 오래 오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지루하지만 더욱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상처받은 짐승들도
제 혀로 상처를 핥아
아픔을 잊게 되리라

가을 가을들은
봉지 안에서 살이 오르고
눈이 밝고 다리 굵은 아이들은
멀리까지 갔다가 서둘러 돌아오리라

구름 높이 높이 떴다
하늘 한 가슴에 새하얀
궁전이 솟아올랐다

이제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게 되는 시간
기다리라 더욱
오래 오래 그리고 많이.

_ 나태주 <다시  9월이>


: 삼봄詩정원 팟빵에서 낭송본으로 듣기 :  http://podbbang.com/ch/1778522?e=24153728


매거진의 이전글 나태주 시인의 <하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