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떨어짐의 계절입니다.
기온도 떨어지고, 나뭇잎도 떨어지고, 한 해 동안 땀 흘려 맺어온 결실도 떨어져 대지를 아름답고 풍요롭게 물들이는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문득, 떨어져 내리는 하찮은 존재에게 감정을 이입해봅니다. 나뭇가지에 더 이상 붙어있을 수 없어 메말라가다가, 그 연결을 더 이상 유지시키지 않고 중력에 몸을 내어 맡긴 잎사귀 한 장의 그 아픈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추락하는 존재들에게 결코 나무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서툰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받아주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저도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고, 겨울을 바라보는 시기가 되었나 봅니다.
릴케의 <가을>을 옮겨둡니다.
2021. 9. 13
떨어짐을 바라보고 있는
삼봄詩이야기
잎이 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들 듯
저기 아득한 곳으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밤에는 무거운 지구가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모든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한없는 추락을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주시는 어느 한 분이 있다.
_ 라이너 마라아 릴케 <가을>
> 삼봄詩정원 팟빵에서 낭송본으로 듣기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8522/episodes/24154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