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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Feb 18. 2022

삼봄詩作 _ 되었다

언제쯤이면 어른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리더십을 개발하는 일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보다 더 깊고, 넓게 함으로써 미숙에서 더 큰 성숙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_ 이창준 <리더십 패스파인더>




언제쯤이면 어른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지난 수요일에 ‘되었다’라는 제목으로 자작시 한 편을 끄적여 두었습니다. 아주 얕고, 좁고, 작디작은 마음으로 쓴 보잘것없는 시여서인지 부끄러웠고, 그래서 아직 공개하지 못한 시입니다. ’나’ 또는 ‘내가’를 주어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무의식적으로 쓰곤 합니다. 대게 이런 자기 중심성이 강한 글들은 독자 입장에서는 울림이 없습니다. ‘너’ 또는 ‘네가’로 시작되는 나태주 시인의 글을 읽다 보면 특히 더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어른 시인의 詩에는 ‘당신’에 대한 사랑이 흠뻑 담겨 있어서 독자에게 따스한 마음 불러일으키는데, 어린 시인의 보잘것없는 글에서는 자기중심의 서술만 있어, 투정을 받아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어른다운 벗들을 제외한다면, 아직 독자를 만나기엔 부끄러운 글입니다.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첫 시집인 <다시, 묻다>를 펴내는 과정에서 종종 머물렀던 질문입니다. ‘당신은 왜 시를 읽는가?’를 묻고 답하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쓰는 이유만을 찾고 있으니 아직 좋은 시를 쓰는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저에게 詩는, 시인 삼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종종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을 때, 혹은 반짝반짝 빛나는 별난 벗들의 아름답고 찬란한 빛을 바라보며 나아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길어지고 짙어진 제 자신의 그림자에 화들짝 놀라 저의 불안한 영혼을 돌보고 치유하며, 어린 마음을 다독인 흔적입니다.


 언제쯤 삼봄도 어른다운 어른의 글을 쓸 수 있게 될까요?

윤동주 <자화상>

 여전한 저의 미숙함을 온전히 마주하고 싶어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필사하고 낭송하며 해가 뜨기를, 그리고 또 벗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아침입니다. 리더십은 우리 안의 미숙함을 바라보는 일이고, 마주 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삼봄씨의 미숙한 글과 떨리는 목소리에 함께 머물러주시는 이름 모를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 남겨둡니다.


——-

새벽에 초고를 살짝 수정해서 낭송해 보았습니다.



되었다


여전히 읽는 사람, 듣는 사람 없으나

여전히 함께 걷는 사람 또한 없으나


내가 읽었으니 되었다

내 손으로 쓰고

내 목소리로 담아두었으니 되었다

내 손과 발로 실험해 보았으니

그러다 좁은 길 하나 찾았으니 되었다


그런데 왜 뒤를 돌아보는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고

왜 멈춰 서서 바라보고 있는가


되었다

때가 되면 오겠지

함께 잘하고 싶은 마음

잠시 내려두고

나부터 잘하자.


_ 삼봄詩作 <되었다>


> 삼봄詩정원 팟빵 방송에서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낭송본과 함께 듣기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8522/episodes/24283139

며칠전 별마당 도서관을 지나다 나태주 시인의 글을 잠시 담아두었습니다. 당신도 나도 함께 빛나는 순간이 다시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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