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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Jul 13. 2016

고착화된 관점에서 벗어나기

질문의 연금술 (3) 관점 디자인 -2부-

나의 학습을 방해하는 유일한 훼방꾼은 나의 교육이다. _ 아인슈타인


2. 고착화된 관점에서 벗어나기

  

  다르게 질문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관점이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을 본다'.  질문을 디자인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기 전에 우리가 쉽게 빠지는 고착화된 관점들을 살펴보자.


기존의 관점에 머무를 것인가? 새로운 관점을 선택할 것인가?




1) 심판자의 관점 vs 학습자의 관점 


  우리는 종종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입장에서 질문한다. 내가 답을 알고 있고, 상대가 올바른 답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질문한다. 심판자의 역할에 서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심판자의 관점에서 질문을 하는 사람은 상대로 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자신이 아직 모르고, 상대방의 의견이 궁금하며,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구하는 마음, 즉 학습자의 역할에서 묻지 못한다면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학습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우리의 관점은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관점에서 질문하고자 한다면, 기존에 가진 관점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기술]의 저자인 마릴리 애덤스는 상처를 주고 비판적이고 승패를 다루는 심판자의 질문과 윈-윈 관계를 원하며 모름을 높이 평가하며 창조의 길을 모색하는 학습자의 질문 중에서 어떤 관점을 취할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습자의 질문에 대한 더 깊은 학습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기술]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심판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렸다. 자신은 알고 상대방은 알지 못한다. 질문을 하더라도 상대가 올바른 답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거나, 상대의 책임을 밝히기 위해서 질문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순간, 질문은 탐구의 도구가 아니라 심문의 도구로 변질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고, 그 한계 밖에 존재하는 것을 탐구하는 학습자의 관점이 더 좋은 질문을 낳는다.


나는 묻고 있는가,
심문하고 있는가?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자로 나눈다.

_벤저민바버




  다섯 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이라는 시가 있다. 삶에 대한 통찰 가득한 이 시의 저자는 싱어 송 라이터이면서 배우, 화가, 사진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포르티아 넬슨이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두번째 고착화된 관점들을 살펴펴보기 전에 시를 함께 읽어보자. 시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다섯 연으로 된 짧은 자서전

AUTOBIOGRAPHY IN FIVE SHORT CHAPTERS _ Portia Nelson


1.

난 길을 걷고 있었다.

I walk down the street.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There is a deep hole in the sidewalk


난 그곳에 빠졌다.

I fall in.


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I am lost ... I am helpless.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It isn't my fault.


그 구멍을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It takes me forever to find a way out.



2.

난 같은 길을 걸었다.

I walk down the same street.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There is a deep hole in the sidewalk.


난 그걸 못 본 체했다.

I pretend I don't see it.


난 다시 그곳에 빠졌다.

I fall in again.


똑같은 장소에 또다시 빠진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I can't believe I am in the same place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but, it isn't my fault.


그 구멍을 빠져나오는 데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It still takes a long time to get out.



3.

난 같은 길을 걸었다.

I walk down the same street.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There is a deep hole in the sidewalk.


난 미리 알아차렸지만

I see it is there.


또다시 그곳에 빠졌다. 습관처럼.

I still fall in ... it's a habit.


난 비로소 눈을 떴다.

my eyes are open .


난 내가 어디있는가를 알았다.

I know where I am.


그건 내 잘못이었다.

It is my fault.


난 얼른 그곳에서 나왔다.

I get out immediately.



4.

난 같은 길을 걸었다. 

I walk down the same street.


길 한가운데 깊은 구멍이 있었다.

There is a deep hole in the sidewalk.


난 그 둘레로 돌아서 지나갔다.

I walk around it.



5.  

난 이제 다른 길로 가고 있다.

I walk down another street.




2) 희생자victim의 관점 

vs 변화창조자ChangeMaker의 관점


  대부분의 관점은 한번의 결심 따위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복적인 경험에 의해 우리는 특정한 관점을 습득하고, 그 관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대응한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근육을 늘리듯이, 관점의 변화는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힘없고, 약자로 살아온 대부분의 어린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힘을 자각하지 못한다. 힘든 일, 의도하지 않은 일에 당면하게 되면, 스스로를 약자와 희생자의 입장에 두고 사고한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힘 있는 다른 사람의 몫이라 여기고, 변화를 만들어낼 책임을 남들에게 미루기 쉽다.


  물론 구멍에 빠진 것은 당신 책임이 아니다. 설사 당신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희생자의 관점에 서서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규명하든, 새로운 대안을 만들든, 더 이상 같은 구멍에 빠질 수 없게 해야 한다.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선택할 수 있다. 왜 도망치는가? 계속 도망만 다닐 것인가?

  희생자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한 답을 고민하기에 바뻐,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낼 여유를 갖지 못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을 겪고, 심정적으로 크게 위축된 이후에 감정을 잘 추스리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구멍 속에 자신을 계속 묶어두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당신이 아니하면 누구이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이며, 여기서 시작하지 않으면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희생자들은 과거-현재의 시점에서 묻는 경향이 있고, 변화창조자들은 미래-현재의 시점에서 묻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발생한 예측하지 못한 고통스런 일들과 현재의 무기력함에 질문이 머무르고 막힌다. 변화 창조자들은 바람직한 미래를 꿈꾸고, 지금-이곳이라는 현실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묻는다. 희생자는 없는 것, 부족한 것에 촛점을 두고, 변화창조자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내부와 외부의 자원들을 살핀다.  

   자기도 모르게 희생자의 질문을 하고 있다면, 변화를 만들어가는 질문들을 마주해보자. 희생자의 관점에 머무를 것인가, 변화를 창조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나아갈 것인가? 혼자의 힘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누구를 만나야 할지, 누구와 함께 할지를 모색하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당당하게 다른 길을 선택할 것인가?




삶이란 단지 경험하고 행동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생각은 다르게 경험하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촉진제일 뿐이다. (life is not a problem to be solved, but a reality to be experinced)
_ 케에르케고르 Kierkegaard




3) 틀 안InSide의 관점 

    vs 틀 밖OutSide의 관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고착화된 틀 안에서 갇히기 쉽다. 해당분야의 경험이 많을 수록, 더 많은 시간을 특정 역할을 수행하며 보냈을 경우, 특히 전문가일수록 특정한 틀, 프레임 안에 더 쉽게 갇힌다. 경험의 부족도 틀 안에 머무르게 한다. 한국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다면,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틀에 갇혀, 세계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기 힘들다.

  30년 이상 회사에서 특정 부서에서 내근 생활만 했다면 부서의 입장/회사의 입장을 떠나 사고하기 힘들다. 특정한 서비스나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해당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간 노력이나 비용등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심리적인 만족감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가치를 느낀다. 그러나 회사의 입장에서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보다는, 원가나 순익 관점으로 제품의 가격을 매기기 쉽다. 같은 제품을 놓고도, 싸다-비싸다는 판단은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쉽게 달라진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평생 업으로써 수행한다. 이미 정해진 교과내용을 짧은 수업시간동안 계획에 따라 진도를 나가야 한다. 수년간 이 일이 반복된다. 이 역할에 갇히다보면 학생들의 입장에서 수업을 바라보기 힘들다. 가르침과 평가라는 관점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어느덧 학교 중심, 교과 중심, 가르침 중심의 틀에 갇혀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소속이라는 틀, 특정 역할이라는 틀에 오래 갇혀 있으면, 틀 안에 갇혀 사고하고 있는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기가 어렵다. 익숙한 관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다른 관점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아야 한다.


  종이 한 가운데 고민하고자 하는 핵심단어(KeyWord, 씨앗단어)를 기록해보자. 그리고 종이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 선을 그어보자. 왼쪽에는 자신에게 익숙한 관점을 오른쪽에는 낯설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관점들을 기록해보자.


(그리다 보니 포켓몬 캡슐이 되어버렸네요)

  예를 들어 당신이 교사이고, 수업혁신을 중심으로 질문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왼쪽에 익숙한 관점을, 오른쪽에는 또 다른 관점들을 기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관점들의 리스트를 적어보는 것, 또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 만으로도 기존에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고하는데 큰 힘이 된다.

익숙한 관점 vs 또 다른 관점


거짓말보다는 신념이 진리를 위협하는 더 무서운 적이다. _ 프리드리히 니체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고민하고자 하는 바와 관련된 또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관련된 이해관계자 목록 만들어보기


 만약 당신이 교사라면, 학생, 학부모, 교육부, 행정직원, 교장, 다른 교사들을 적어볼 수도 있다. 사람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면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주제를 고민하는 것이 좋은가? 당신 관점에서만 문제를 바라보면 해결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까? 익숙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새로운 관점은 무엇인가?


  우리가 빠져나와야 할 가장 중요한 관점은 '자기중심'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선호, 신념, 행동이 실제보다 더 보편적이라는 착각 - 자기 중심성을 넘어서지 못하면 관점의 변화는 생겨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의 관점에서 고민할 수 있을 때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며, 회사는 고객의 관점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어야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관점, 마케터의 관점, 세일즈맨의 관점, 엔지니어의 관점이 결합될 때 제품은 혁신된다. 교사는 학생의 관점에서 수업을 준비할 때 학생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관점에서(혹은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부모들이 자녀이 관점에서 양육할 수 있어야 친밀함과 훈육 두 가지 과제 모두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당신이 익숙한 상자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관점은 무엇인가? 누구의 눈으로 다시 바라봐야 할까? 익숙한 상자 밖에서 사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일단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보자.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짝이 있다. 교사에겐 학생이, 사장에겐 직원이, 회사에겐 고객이, 판매자에겐 구매자/사용자가, 부모에겐 자식이, 어른에겐 아이가 있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관점은 무엇일까?


내 입장에서 물을 것인가?
상대 입장에서 물을 것인가?
'우리'라는 더 큰 관점에서 질문할 것인가?



프레임은 한마디로 세상을 보는 창이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향한 마인드 셋, 세상에 대한 은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프레임의 범주에 포함되는 말이다. 마음을 비춰보는 창으로써의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제한하는 검열관의 역할도 한다. _ 최인철 [프레임]




어떤 프레임이 활성화되면 그 프레임은 특정한 방향으로 세상을 보도록 우리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_ 최인철 [프레임]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새로운 관점을 취할 수 없다. 특정한 관점에 사로잡힌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을 선택할 것인지는 오로지 당신 자신의 선택에 기반한다. 새로운 관점을 묻고 탐구할 준비가 되었는가?



2016. 7. 13. 질문술사


<질문의 연금술, 이전글 다시 보기>

https://brunch.co.kr/@ilwoncoach/48

https://brunch.co.kr/@ilwoncoach/49


<질문의 연금술, 관점디자인 _ 다음글 예고>

 질문의 연금술 (4) 관점디자인 3부 - '어떤 관점에서 물을 수 있을까?'
: 질문을 하기 전에 새로운 관점을 선택하는 방법을 안내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질문디자인연구소라는 이름을 걸어두고, 질문을 공부하고 활용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다른 사람들의 질문능력을 향상시키기에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훈련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질문하는 힘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 다르게 질문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몇 가지 안내해 보려고 합니다. 항상 부족한 글을 읽고 응원해 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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