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봄詩作 231214 ||| 씨앗 하나 심지 못한 겨울밤의 글
시에 대한 나의 사랑은 삶에 대한 사랑과 다른 것 이 아니었다.
한 편의 시는 사랑의 눈으로 들여다본 막막하고 안쓰러운 세상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때 나는 예술지상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예술지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시로부터 멀리 떠나와 살게 되었다.
그토록 젊고 아름다웠던 '시'라는 애인은 이제 막 흰머리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중년 여인이 되었다.
이제 나는 시의 흰 머리카락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_ 이성복 시론 <고백의 형식들> 중에서
씨앗 하나 심지 못한 겨울밤의 글
시를 사랑하긴 쉬우나
삶을 사랑하긴 어렵더라
멋진 문장을 사랑하긴 쉬우나
자기 안의 이야기를 정성스레 풀어내는
작가의 삶을 이어가긴 어렵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을 보니
고통스러워도 삶을 사랑하길
포기하지 못한 나이 든 이들이었다.
시를 사랑하는 젊은 이들이 쓴 시보단
삶을 사랑하는 늙은 시인의 글이 좋더라
시는 사랑의 부스러기 같은 것이고
사랑은 삶의 씨앗 같은 것이더라
젊을 땐 사랑하는 게 일이고
늙어선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하는 게 일이다.
남은 날까지 열매 맺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어도
일단 씨앗은 땅에 심고 뿌리내리게 해야 하고
싹을 틔우도록 기다리고 가꿔줘야 하며
오래오래 보살펴야 하는 것이더라.
그러니 내면의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표현된 사랑이 귀한 것이겠지.
아직도 내 글은 무르익지 못했으나
그래도 쓰는 삶을 멈추진 못하겠다
별다른 결실 없는 날이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끄적여둔다.
_ 삼봄詩作
<씨앗 하나 심지 못한 겨울밤의 글>
아! 오늘 밤 퇴근 길
왜 우울해져 검댕이 묻은 것 같은 글을
계속 쓰고 있는지 알았어!
몇 개월동안 함께
리더가 되는 일을 묻고 답하던
모임 하나가 오늘 끝났어.
그리고 내일도 모임 하나가 끝나.
그게 아마 슬펐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