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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도리 Apr 13. 2024

비 오는 도쿄에 다녀왔습니다_3

계획대로 안 풀리는 퇴사 여행기3

3박 4일의 도쿄 일정 중 셋째 날이 밝았다. 마지막 날은 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도쿄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날인 셈이다.


다행히(?) 여행이 끝나갈수록 날이 맑게 개기 시작한다. 옆을 지나가는 한국인 여행객이 '우산을 챙겨 왔는데 쓸 일이 없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내놓는다. 어제 가와구치코에서의 악몽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온다. 삶에 있어서 타이밍도 참 중요하다.


비가 그친 도쿄의 아침


오전 일정은 해리포터 스튜디오로 향했다. 작년 6월에 오픈한 따끈한 테마파크로, 해리포터 팬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해리포터를 즐겨보지 않은 탓에 사실 큰 흥미는 없었지만 해리포터 극성 팬인 친구 덕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범상치 않은 테마파크의 입구. 그간의 포스터들이 나열되어 있어 일대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극성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대작이라 나름 흥미를 자극했다.



문을 열면 엄청난 규모 덕에 몰입도 높은 공간이 펼쳐진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만의 재미난 체험 요소가 있는데, 특수효과가 가미된 세트장에서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QR코드를 이용해 핸드폰에 간편하게 저장도 가능하다.


한 켠에서는 촬영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송출되는데, 꽤나 긴 시간 동안 우리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발걸음을 얼른 재촉해 다음 장소로 향했다.



세트장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컨텐츠들도 흥미로웠다. 영화가 흥행하면 스포트라이트를 배우들이 받기 마련인데, 그 이면에 공간, 장비, 음향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해리포터가 상영된 지 벌써 20년이 더 지났는데 이런 기술력과 디테일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2시간 정도 소요되는 테마파크 투어를 달달한 버터맥주로 마무리했다. 만 원 남짓한 돈으로 즐기는 버터맥주. 맥주잔까지 기념품으로 제공되니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다.


엄청나게 달달한 버터맥주. 맥주잔도 기념품으로 제공된다.


호그와트의 전경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2시간을 걸어 다녔더니 슬슬 배가 고프다. 일본식 커리가 먹고 싶어 나카메구로역 근처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별도의 좌석은 없이 스탠딩으로 식사하는 곳인데, 젊은 외모의 사장님들에게서 중동아시아의 느낌이 풍겨온다. 본의 아니게 일본에서 인도식 커리를 맛보게 됐다.


아무렴 어때. 뭐든 맛있으면 된다. 진한 수프형태의 커리에서 다채로운 향신료가 가미된 풍미가 느껴진다. 살짝 매콤한 맛을 매쉬드 포테이토와 절임 반찬들이 중화해 주고, 씹히는 고기들이 재밌는 식감을 더해준다. '역시 인도는 커리 강국이구나'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가슴깊이 새기고 돌아왔다.


커리가 맛있었던 'Masala Curry'


식사를 마치고 쇼핑을 하기 위해 쇼핑의 메카, 다이칸야마로 향했다. 명동 거리의 두세 배는 되어 보이는 엄청난 인파에 휩쓸려 실시간으로 기를 뺏기며 걸어갔다. 두 I 들에게 이 정도의 인파는 몹시 버거운 환경이었다.


걷다 보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오늘 인파의 원인을 찾은 것 같다. 도쿄의 봄을 알리는 풍경을 열심히 두 눈과 카메라에 담아왔다.


벚꽃이 만개한 도쿄의 거리. 날이 조금 흐리다.


인파에 지친 탓인지 결국 쇼핑은 하지 못하고, 겨우 자리를 잡은 카페에서 커피를 수혈한 뒤 치킨난반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앙증맞은 호랑이가 있는 식당에서 나마비루로 기력을 보충했다. 살얼음이 느껴지는 맥주가 두 다리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수제 타르타르소스가 더해진 치킨난반.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과 넘치게 흐르는 육즙을 맛볼 수 있어 맥주와도 찰떡궁합이다. 속을 든든하게 채운 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도쿄타워로 향했다.


치킨난반이 맛있었던 '코시탄탄'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도쿄에서의 하루하루가 고됐던 이유가 바로 느껴진다. 정말 부지런히 열심히도 다녔다. 여행을 누구와 가는지에 따라 여행 스타일도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 친구와 함께 오게 되면 매번 '쉬어가는' 여행을 추구했다가 몸이 쉬어버리는 극도의 효율 추구 여행이 되어버리곤 한다. 항상 같은 패턴이라 재밌기도 하다.


도쿄타워 인근에 도착하니 멀리서 화려하게 불을 밝히는 야경이 드러난다. 파리의 에펠탑 같기도 하고, 홀로 곧게 솟아있는 모습이 진풍경이다.



길가엔 벚꽃이 만개해 있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같은 건축물이라도 자연을 한 프레임에 담아내면 훨씬 안정감 있고 다채로운 사진이 완성된다.



바로 인근에 위치한 '프린스 시바 공원'에 오르면 푸른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도쿄타워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한국인에게는 이름이 다소 거칠게 느껴지지만(?) 평화로운 도쿄의 밤분위기를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프린스 시바 공원에서 보이는 도쿄타워의 야경


도쿄 여행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도시를 정말 균형감 있게 구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층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즐비한 도심에서도, 몇 걸음만 지나면 한적한 여유와 자연을 누릴 수 있는 공원을 만나볼 수 있다.


그만큼 도시 곳곳에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많이 마련되어 있어, 어디서나 바쁘고 분주한 도심을 벗어나 여유와 자연을 즐길 수 있다.


땅덩이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갈수록 고도화되는 현대사회에서도 '결국 인간은 자연을 보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품어보았다.



그렇게 한적한 낭만이 가득한 도쿄의 밤을 바라보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애초에 기대했던 낭만과 햇살이 가득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며 나의 생각을 정립해 가는 시간을 보낸 행복한 시간이었다.


퇴사를 다짐하며, 갈수록 좁아지는 삶에 대한 나의 시야와 가치관을 다시 넓혀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여행이 좋은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음 여행지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다양한 공간에 많이 다녀보려고 한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그리고 그때 느끼는 영감들을 지금처럼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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