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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과참 Aug 09. 2023

부정이 밥 맥여주나, 긍정이 맥여주지

[ㅂ] 부정적이다
뒤집기만 하면 긍정적이게 되는데,
긍정과 달리 별 도움 주는 건 없음


  눈칫밥 꽤나 먹은 사람들은 사고 회로가 부정 쪽으로 발달한다. 이후 긍정적으로 사고해야 함을 깨닫기까지, 긍정으로 회로를 돌리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부정을 마냥 무시할 게 아라 둘이 한 끗 차이임을 인정하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골인 지점이 게 있다면 사람마다 시간 차는 있을지언정 덜 힘들 텐데, 이놈의 부정이 자기 멀리하지 말라고 자꾸만 방해한다. '인정' 지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부정과 지긋지긋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싶다가도 부정에 휩싸이는 게 이러한 사고 회로의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사고 회로는 특정될 수 없다. 세상만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다만 위에 언급한 조건 외에도 좋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거나, 성장기에 갖은 고뇌를 겪었거나, 성인이 돼서도 특정 사건에 시달린 경우 사고 회로는 이런 식에 가까워진다. 희망은 사고 회로가 고정되지는 않다는 점이다. 


  [ㅂ] 편으로 '부정적이다'란 단어를 꼽은 데는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어서다. 이전까지 서술한 네 편의 경험담(삼대 고양이 소개가 목적이던 2편 제외)에는 과거와 현재가 혼재해 있는데, 감정 과거에서 현재를 따라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고 있다.




  강아지가 집에 온 해 성적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무리에 소속되지 못해 방황했다. 피구, 축구, 배구 등  못했지만 엄마가 제시간에 오지 못해 위축된 아이에겐 친구들 다 떠 레인에서 홀로 뛰는 만큼 비참함을 갖게 하는 운동이 없었다. 우리 집 밥상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체감하기 전부터  먹고 나면 배아프기 일쑤였다. 엄마의 아들 바람 알고 있었더라도 내가 태아일 적부터 성별이 싫어 운 것과, 남아로 바뀌게 만우절에 낳으말은 아무리 농이었다 한들 우울을 가중시켰다. (지금은 모조리 극복했!)


  '강아지'부터 '가중시켰다'까지의 대목을 읽 눈살 찌푸려지는 분도 있으리라. 쓰는 나조차 미소 지어지지 않다. 이는 한 단락을 '부정적'으로만 서술해서다.


  강아지 덕에 학교에서스트레스를 달랠 수 있었고 강아지와 친해지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달리는 걸 끄러워 한 순간이 있기에 자극을 받아 연습할 수 있었고 운동 통한 새로운 경험에 이를 수 있었다. 가족들 건강과는 먼 식품에 의지했 스스로 요리를 익히며 또 다른 즐거움을 체득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농담어린 손녀에겐 상처가 되었지만 그로 인해 모두가 잊지 못할 일화이자 내 생일만의 특이점이 생길 수 있었다.


  이 대목이 재미없는 서술임은 인정한다. (요약엔 소질이 없습니다...^^) 다만 한 단락이 '할 수 있다'란 가능형과, '~덕' '더 나은' '새로운' '즐거움' '특이점' 등의 긍정적인 단어로 채워져 있으니, 이 단락을 읽고 눈살 찌푸려질 분은 없으리라 예상해 본다. 남들을 위해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오직 스스로를 위해 '긍정적 사고 회로'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집에 어른이 없으니 언니한테 툭하면 맞았다. 폭행이 익숙해지니 강도는 높아져갔다. 가족이 와해되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갈등이 잦았다. 아빠의 잘못에 자식까지 똑같취급당하며 어른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조퇴조차 용납 못하는 부모님 아래에서 울면서 학교를 다녔다. 어른들이 바라는 자아와 내가 바라는 자아 격차로 힘들었다. 노력해 봤자 "너 때문에 가족이 불행한 거야"란 소리를 들었다. 럴 바엔 찍 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가정 내 제일 어린 사람으로서 이른 나이부터 불행을 지켜봤. 상처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복되는 암흑이 어쩌다 오는 기쁨들을 다 가려버렸다. 친한 친구들은 "넌 왜 이리 기억을 못 하는 거냐"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전날 하하 호호 나눈 대화가 아니라 10분 전 대화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머릿속은 스트레스로만 꽉꽉 채워져 있었다. 부모님 다간 죽을까 봐 불안해했는데, 상황을 알지 못하는 친구 또한 "넌 왠지 모르게 사라질 것만 같아"라 우려할 만큼 심각해졌다.


  지금의 나는 이런 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서술하고 싶지도 않다. 과거인 건 맞지만 이 과거가 남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듯, 나에게도 좋을 게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상처 없는 가정이 존재하기란 쉽지 않듯, 상처가 아예 없는 개인 또한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상처를 몰아 받은 탓에 또래보다 성숙해질 수 있었다. 요즘에는 나와 다른 이들을 포용하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를 이겨내고 앞으로 받을 상처에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긍정에 집중하는 자세갖춰야 한다.




  성인이 되면서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하도 뭐라 한 데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조차 떠오르는 억이 없다는 게 황망했기 때문이. 현재는 일기를 드문드문 써도 잘 기억한다. 지인들 "이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냐"면서 놀라고, 가족들과 있을 때도 "원래 안 이랬는데, 기억이 많이 회복됐다"면서 신기해한다. 처음엔 기억력이 마구 향상되는 것도 모자라 까먹었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게 낯설었다.


  기억력 날로 좋아지는 원인은 '현재를 기록'하며 '현재에 집중'해서였다. 그냥 과거도 아니고 부정적인 과거만 되뇌었던 탓에 머리 현재랑 미래가 들어올 틈이 없었다. 현재를 바라보니, 10년 전의 상처보다도 10시간 전의 즐거움이 더 크게 껴졌다. 이 과정이 반복되자 복이 빨라졌다.


  으로, 낙천과 낭만을 추구했다간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기 . 하나 현실을 하루하루 잘 살아내기 위해선 이 두 가지만큼 도움 되는 것도 없다. 낭만을 챙기니 인간관계가 넓어졌고, 낙천적이게 구니 얼굴에 웃음이 장착되었다초대받지 못한 부정이 여태껏 쌓아놓은 돌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흩어진 돌이야 쌓으면 그만 아닌가.


  요약: 부정이 아무리 겁을 준들, 긍정을 이길 순 없. 긍정적이게 살면 밥 얻어먹을 일 많! 미미한 부작용으론 밥 사줄 일도 많다는 점만 그로 인해 즐거움은 배가  수 있다.


'부정적이다'의 용례
1) 부정적이게 군다 해서 상처 난 마음이 회복되진 않습니다.
2) 부정적인 사회 말고 긍정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길!

참 예쁘지요? 처음 보는 이도 웃음으로 대하는 강아지의 태도를 본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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