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여행
부석사 정류장에 내려 제일 먼저 막차 시간을 확인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두 어시간. 잠시 망설였다. 갈길의 촉급함보다 뱃속에 가득 찬 허기가 신경까지 잡아끌고 있었는데, 주차장 쪽에서 날 부르는 듯한 북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보니 조명이 가득한 야시장이 열려 있었다. 말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진부한 속담마저 위안이 되어,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 고, 이왕 늦었으니 여행의 기본, 밥을 먹었다. 천막 아래 식당의 맛없는 국밥 한 그릇도 허기의 신경질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혹여라도 부석사에 들어갈 수 없으면, 실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곤한 몸을 향한 일종의 협상이었다.
20241028.
랜턴까지 꺼내 길을 비추었다. 부석사로 가는 길은 어둠뿐이었고, 길가의 나무가 무언지 알게 하는 냄새가 뭉근하게 올라왔다. 은행알은 고약한 냄새로 이파리에 흠뻑 묻은 볕과 정을 떼내고 있었지만, 은행이파리는 바람도 없이 노란 눈처럼 힘없이 내리더니 마지막 초대처럼 융단을 깔아 놓았다. 그렇게라도 바라보아 걱정되는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찰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천황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높다란 계단은 천길처럼 아득했다. 이리도 어렵사리 왔는데 보지 못할까, 마음속에서 불안과 안타까움이 대거리를 하고 있었고, 계단을 올라 문이라도 두드리려고 심정이 차오르는데, 옆에서 사람이 나왔다. 절간에서 나오는 마지막 관광객들이었다. 나는 얼른 옆길로 들어갔고, 아무도 나의 늦은 방문에 토를 다는 이 없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늑함만이 날 반겼다.
부석사浮石寺는 676년(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義湘이 봉황산에 화엄종으로 창건한 조계종 소속 사찰이며, 삼남의 사찰 중 세계유산으로 묶은 '7 산사' 중 하나이다. 부석은 떠있는 돌이란 의미인데, 무량수전 왼쪽 옆에 고임돌에 괴여 있는 너럭바위를 말하는데, 옆면에는 친절하게 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이 태백산에서 돌아와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하고 부처의 가르침인 대승大乘을 널리 펴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고 간략히 서술하고 있지만, 부석사에는 의상과 연분이 난 선묘善妙의 설화가 그득하다. 절의 이름에 대한 유래도 그렇고, 선묘정이라는 우물과 선묘각이란 사당도 있으며,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무량수전에서 그 앞 석등으로 이어지는 암맥을 죽은 선묘를 상징하는 석룡이라 하니, 부석사보다는 선묘사가 더 어울릴 것이다.
찬미하거나 원한을 품은 자들에 의해 진실은 흐려지고 몽롱한 관심을 끌기 마련이며, 이를 설화라고 한다. 입속의 혀들이 달랑거리며 달콤한 귀맛을 내는 가짜이야기다. 사람들은 본시 본능적이고 감정적이라 가짜에 속기 쉽고, 속기 시작하면 믿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생의 인류가 다른 인류를 파멸시키고 생존했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부석의 설화는 이렇다. 의상이 당나라에 도착해 양주의 주장州長(제후)인 유지인劉至仁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유지인의 딸이 선묘이다. 의상은 금기를 깨고 선묘를 사랑했지만 유학을 마쳤다는 핑계로 도망치듯 귀국한다. 그를 흠모한 선묘가 손수 지은 법복을 들고 뒤쫓아가지만, 이미 의상은 떠난 후라, 바다에 뛰어들어 용으로 변했다.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이 신라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게 했고 절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본래 이 절터에는 이교도의 무리가 모여 있었는데, 선묘를 갸륵하게 여긴 산신이 큰 바위를 이도교 위에 뜨게 해 혼비백산시켜, 의상이 절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가짜에 맞서는 건 진짜가 아니라 가짜가 될 수 있듯, 이 설화를 들추어낸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나의 설화는 이렇다. 의상은 당나라 유학에서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금기를 깨고 정을 통한 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선묘를 버리고 갔는데, 선묘는 그만 절망감에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했다. 사랑 후에 남는 것은 후회와 죄책감인지라, 특히나 사랑이 처음이어서 강렬하게 경험한 의상은 죽은 선묘의 환영까지 보게 된다. 그즈음 왕족인 의상은 입지를 위해 자신의 왕국과 같은 절을 세우려 했다. 죄책감의 환영과 절을 세우겠다는 일념에 빠진 의상은 봉황산에 올라 큰 바위에서 불공을 드리는데 그 바위에서 선묘의 환영을 보게 된다. 의상은 그 환영을 지우려 큰 바위를 떨어뜨린다. 바위가 이교도를 죽이며, 마치 선묘가 도와준 신묘함으로 꾸며진다. 이 역시 맹랑한 이야기일 뿐, 부석의 참된 의미는 기적이자 기적을 바라는 백성의 바람이고, 그 바람을 품고 있는 부처이기도 할 것이다.
금당으로 향하는 사찰의 마지막 문인 해탈문이자 극락을 의미하는 '안양安養'루를 지나면 다른 사찰의 대웅전 격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이 나온다. 부석사가 원래 화엄종으로 창건했기 때문에 석가불이 아니라 아미타불(무량수불)을 본존불로 모신다. 아미타불은 극락정토의 주인이고, 영생이란 뜻의 무량수가 곧 극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금당의 이름도 무량수전(극락전)이다.
무량수전이 여타 금당과 다른 것은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 현존하는 목조건물이란 사실이 아니다. 대부분의 대웅전은 앞문을 열면 본존불이 떡 버티고 있는데, 무량수전에는 구석에 모셔져 있다. 이는 거대한 불상에서 풍기는 위압감을 없애며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곳으로 다가서자, 어둠을 밀어내며 창살을 비추는 등빛에 녹아든, 화려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이 만들어놓은, 낡은 장대함이 일순간 말을 잃게 하는 엄숙함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어느새 내 시선도 설핏 열린 살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곳에 중년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말없이 부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녀는 멀리 떨어지지도 바특하게 있지도 않았고 낭창하게 소원하지 않았지만 곧 끊어질 것 같은 줄에 연결된 거리감이었다.
저 남녀는 적막하고도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사연이 있을까, 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무량수전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윽고 일상적인 저녁 예불이 지난 시간에 때 아닌 염불을 했다. 스님의 목소리는 안개처럼 낮게 깔려 쓸쓸함을 쓸어냈으며, 그 뒤의 남녀는 나우 슬퍼 보였다. 무엇을 잃은 것은 것일까. 확실한 건 저들이 잃은 것이 나의 상실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괜히 내 마음마저 무너져 내렸고, 부서진 조각들이 밤을 유영하는 듯했다.
'죽다', 는 '주다'이니, 죽음이란 모두 주고 떠남을 의미한다. '산다'와 '살다'는 죽음으로 준 것을 사서 살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니, 죽음에서 삶은 다시 어어지고 피어나기 마련이다. 산사에서 인간들이 사는 골짜기 속세로 내려오는 길에서, 즈려밟던 죽은 이파리, 별 것 아닌 이별, 부서졌던 내 마음이 다시 살아나 별 것 없는 밤으로 떠오르는 듯했다. 이도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했던, 썩은 사과에 실린 표지일지도 모른다. 죽어가던 사과가 날 부석사까지 가게 했고, 남은 사과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찡찡한 표정을 짓던 전진동생을 미소 짓게 했고, 그래 나도 웃었다. 이 사과가 변신한 부처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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