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독립 06
"난 네가 착해서 좋아."
누군가 내가 왜 좋으냐 물으니 이리 답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하다니. 내 장점이 착한 것 밖에 없나? 착한 게 장점인가? 당신은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군요.. 이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는지 상상에 맡기겠다.
누군 태생부터 착했나, 난 그저 전쟁 같은 집안 분위기에 방어선 같은 행동이 '착함이란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뿐인데..
엄마에게 보낸 사랑이 나에게 계속 착함을 유지하게 되는 족쇄가 될지 몰랐다.
난 그냥 엄마가 아픈 게 싫었고 상처받는 게 싫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가 내 세상의 반인 아빠에게 무너져내려 우리를 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릴까 무서웠다. 몇 번은 늦은 새벽 부부싸움을 한창 하다가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대답을 강요했다.
쾅!
" 일어나! 부모가 싸우는데 잠을 자? 엄마아빠 더는 같이 못 살아, 이혼할 거니까 너 누구랑 살 거야? 누구랑 살 지 지금 정해!!"
"이혼하면 아무도 안 따라가고 나 혼자 살 거야."
어려도 눈치가 백 단이었었던 나는 엄마 아빠가 원하는 '엄마, 아빠 이혼해요? 제발 이혼하지 마요. 엉엉..' 하는 대답은 목구멍 밖으로 내뱉어 절대 해주기 싫었다. 부부싸움에 나를 이용하는 걸 알면서도 난 두려웠다. 어린 자식을 깨워서 그 자식이 상처를 받든 말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부모님, 당신들이 정말이지 많이 원망스러웠다. 내 일상을 망치는 당신들로 인해 우는 모습도 보이기 싫어 이불 뒤집어쓰고 옷소매에 쏟아지는 눈물을 적신 밤 해도 별처럼 셀 수 없는 밤들이 나에게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린 시절 내 감정을 떠올리면 조금 답답하고 조금 안쓰럽다. 꾹꾹 마음을 담고 눌러 몰래 울었던 기억들이 너무 많아 다 큰 지금도 좀처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아서.
그래도 나보단 엄마가 더 힘드니까, 직접적으로 아빠와 싸우면서 타격을 받는 건 엄마니까. 난 엄마가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나라도 엄마를 여왕처럼 대접해주고 싶었다.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내가 비슷하게나마 주고 싶었고, 챙겨주고 싶었고 외롭게 두고 싶지 않았다. 어디 가서 기죽지 않게 남부럽지 않을 딸로 있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했던 엄마를 위한 행동들이 성인이 되서까지 이어지니 점점 내 의견과 엄마 의견에 차이가 생기고 서로 의견이 달라질 때도 엄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엄마와 나 사이에도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엄마와 생각이 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나에게 뾰족한 말들이 쏟아졌다.
"저 싸가지 없는 년!"
"그렇게 말 안 들을 거면 당장 집에서 나가!"
"부모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뭐가 그리 잘났어?"
"지 아빠 닮아서 하는 짓이 그렇지."
"그러니까 네가 친구도 없고 사회생활도 못하는 거야."
나는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좋은 말로 엄마의 잔소리, 야단이라 순화시켜 말하지만, 어쩔 땐 폭력을 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엄마는 날카롭게 다듬은 독한 말을 본능적으로 사용한다. 따라 할 수도 없는 기술로 순간순간 주변으로 살피지 않고 마음껏 휘두르며 내가 방어할 세도 없이 마음의 급소를 향해 찔러 넣는다.
내가 엄마를 덜 사랑했으면 그 말들에 덜 상처받았을까.
폭격처럼 초토화시킨 마음을 다시 아무렇지 않게 걸어 들어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나에게 말을 건다.
"딸, 아직도 삐져있어? 엄마랑 산책하고 맛있는 거 먹자~ "
자. 그러고 나면 결국 뭐만 남는가,
삐져서 꽁해있는 딸년만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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