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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지랄 떠는 딸년이 된 이유(2)

느린 독립 07

by 삼각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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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동생이랑 둘이 술을 마시다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난 가끔 아빠가 불쌍해."


자긴 아빠가 이해된다고, 아빠가 불쌍하다고. 이 말을 들었을 땐 어이가 없었다.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바로 옆에서 봤으면서 어떻게 아빠 편을 들 수 있지? 너도 아들이라고 결국 남자는 남자 편을 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그런데 나도 '엄마 바라기'로 살다 적당한 거리가 되고 보니, 부모님의 관계성과 싸움의 원인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를 수 있고 내 프레임에 갇혀 한쪽 부분만 보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이 어떻게 딱 한 가지 성격과 캐릭터로 정의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다 입체적이다. '가족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만 한 불쌍하고 가련한 엄마'라는 건 내가 정하고 바라본 엄마의 캐릭터였다면, 엄마는 그 외에도 캐릭터가 여러 개가 있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남편에게 히스테릭한 아내', '인정과 이해는 부족하고 자기 입장에서만 말하며 인신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다정함에 서투른 사람'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내가 모르는 여러 캐릭터도 존재해할 것이다.


부부싸움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빠의 싸움'이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이 성격이 달라 생긴 갈등'으로 바라보니 엄마는 어렸을 때 내가 생각한 절대적 피해자가 아니었고, 부부 관계에서 나는 제삼자인 자식일 뿐. 남녀사이 누구 편을 들고 잘잘못을 가릴 수 없다는 부분도 있다는 걸 깨닫자 나는 부모님의 갈등 사이에서 한 발자국 벗어났다. 친구보다 더 가깝고 매일 붙어 다니며 놀던 엄마랑도 조금 거리를 두고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머리가 굵어지고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엄마가 주는 상처에 대한 대처법을 찾게 됐다.


프리랜서와 자영업을 거쳐 학원 강사를 하게 되면서 정해진 아이들을 꾸준히 오랜 기간 상대하다 보니 아이들이 귀엽다고 착하게 다정하게만 대하면 안 된다는 걸 몸소 느꼈다.


대단한 교육이라고 하긴 민망하지만, 미술학원 수업도 교육은 교육이다. 미술이든 무엇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자신감 있고 당당해야 한다. 같은 실력으로, 같은 내용의 수업을 해도 목소리의 크기, 속도, 눈빛, 여유로움 등의 태도에 따라 아이들은 다르게 받아들이고 행동했다. 아이들은 순수해서 내 태도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해 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스스로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많이 느끼고 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변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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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성격이나 가치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아이들에 따라 태도는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는 걸 배웠다.


성격은 활달한데 처음 학원에 와서 낯가림이 있는 아이와, 성격은 활달한 아이인데 학원에 오기 전부터 기분이 안 좋은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과 가르치는 방법은 달라야 하고, 그림 실력은 있는 데 자신감이 없는 아이와 실력은 없지만 자신감이 많은 아이에게 같은 그림수업이지만 티칭이 조금씩 다르게 들어간다.


개개인의 실력을 향상하면서 그림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의 성향과 파악하고 그날그날 기분이나 성장 중인 아이들의 감정기복을 살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대하는 방법에 자신감이 생기고 아이뿐 아나라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는 것도 자신감이 생겼다.


자연스레 엄마가 나에게 퍼붓는 감정적 공격도 다른 스타일로 맞서게 되었다. 예전에는 감정적인 공격에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아무리 엄마의 말에 맞받아 친다고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고 결국 나만 잔뜩 상처받고 흐지부지 되거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는 개지랄 떠는 딸년이 된다. 더 큰 지랄로 대응한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 인가 싶지만, 무논리로 감정적으로 퍼붓는 사람에게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비슷한 텐션으로 대응을 해주어야 그나마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음을 분위기상으로 느끼게 된다. 짜증 나는 목소리로 설득시키려는 텐션은 큰 목소리와 인신공격으로 무너진다. 그리고 결국 '내가 압박하는 대로 될 거야 넌.'라는 기싸움에서 지게 된다.


이 압박에서 이기고 대응하는 건 같이 크게 목소리 내는 것뿐이다. 조용히 있으면 요구하는 자신의 논리가 맞다고 생각하고 내가 자신의 의견에 수긍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는 목소리에서 대단한 내용은 필요 없다. 다만,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더 심하게 인신공격을 하거나 가스라이팅해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었으면 이런 머리도 굴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럴 능력도, 그렇고 싶지도 않아서 단순하게 굽히지 않고 일관되게 내가 하고 싶은 말로 대응했다.


엄마가 받는 서운함보다 단단히 지켜내 앞으로 무럭무럭 키워낼 내 감정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항상 내 마음속 1순위였던 엄마는 2순위로 내리고, 나를 내 마음속 1순위로 당당히 올려 두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가 제일 사랑해야 하기에, 엄마가 하라고 하는 일이 하기 싫은 일이면 하지 않고, 내키지 않는 일은 억지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착한 딸에서 지랄 같은 딸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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